티아☆푸딩케잌 하우스! #25

 

# 25



말기이기는 하지만 아직 6월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름방학식을 하루 앞두고 최악의 더위가 찾아왔다.


그 더위의 집요함은 어떤 정도였냐 묻는다면, 노출을 싫어하는 내가 속옷을 제외하고 1겹 이상의 상의를 입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 약간 설명이 애매하다고 생각된다면 여기서 조금 보충하자.

여기서 말하는 속옷이란 정확히 말해서 브래지어를 뜻한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딱 한번,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학교에 갔던 적이 있었다.

뭐, 딱히 대단해 보이도 않는 재미없는 이야기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그때 겪었던 좋지 못한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리를 해서라도 속옷을 입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트라우마라는 것이다.

어떤 경험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상상에 맡기겠다.


이차저차, 중요한 설명을 다 빼먹은 것 같기는 하지만,

결국 이 속옷은 ‘최후의 최후를, 최악의 경우만을 위한 보루’라는 녀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뭐, 그렇게 잔뜩 포장했어도 쉽게 말하면 ‘계륵’이라는 것이지만.


물론 내가 괜히 이런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방학이 시작하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나에게 좋지 않은 아침으로서 방학식은 찾아온, 오늘 아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

.

.


“…하아, 너 이게 몇 번째인 줄 알아?”

“아직 네 번밖에 안 찍었어.”


실실 웃으면서 내 집 앞에서 꽃을 들고 있는 명환이.

저 ‘네 번’이라는 말은 저 놈이 내 앞에서 꽃을 들이댄 횟수를 뜻한다.


분명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된다.

세상에는 열 번이 아니라 천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아, 이참에 내가 널 찍어 넘겨주랴? 그 허리가 꺾여서 영원히 못 일어나게?


“후우…적당히 하지 않으련?”

“부디 내 여자 친구가 되어줄 수 없겠니? 지영ㅇ…쿠흡?!”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번개처럼 튀어 오르는 주먹의 이름은 가젤펀치.

바보의 허리가 기억자로 꺾이며 그대로 꽃다발과 함께 침몰한다.

대쉬할 사람이 따로 있지, 도대체 왜 나한테 집착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놈이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가워 머리를 은색이나 흰색으로 염색이라도 하고 생각할 만큼 괴로운데, 도대체 이 바보는 날 어디까지 리미트 해제를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내 인간성 한계를 쓰리까지 풀고 복날 개 맞듯이 맞아보고 싶은 건가?


“이야, 날이 덥기는 덥나보다? 그 교복 되게 얇은 게 속옷 비친ㄷ…뜨헉?!”

-짜아악-!!

“닥치지 못할까!!”


반사적으로 소리치며 뺨을 때렸다.

살 때리는 찰진 소리가 공기 중으로 터지며, 시원시원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얇은 흰색 블라우스에 어두운 색 속옷을 입었으니 비칠 수밖에, 하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밤에 양화가 내 속옷더미에 요구르트만 흘리지 않았어도…!!


“하아, 넌 덥지도 않니?”

“아야야…푸후…이정도 더위쯤이야….”

“아, 그러셔?”


좀비 같은 근성의 너와는 달리 내 몸은 좀 아닌 듯싶다 야,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땀에 푹 절어서, 기껏 개운하게 시작한 아침이 땀 냄새로 가득한 오후가 될 것만 같아 예전에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양산’이라는 물건을 준비하러 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도대체 뭐냐? 대체 뭐가 부족해서 내가 싫다는 거냐?”


막 돌아가려는 내게,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머금고 악을 쓰며 이쪽을 올려다보는 명환이.

나는 그 모습에 기가 막혀서 양 손을 허리에 얹고 바보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아, 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봐.

니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되어있는 것인지를!


“명환아.”

“왜?”

“너 인간성 좋냐?”

“…………꽤 좋다고 생각하는데.”

“너 사회성 좋냐?”

“……이래 뵈도 일진계에서는 아는 놈들이 쫙 널려 있다고.”

“너 공부는 하냐?”

“그럼! 먼저 나가서 사회공부를 하고 있지! 굽실거리는 법이랑 까부는 놈 밟는 법 등등….”

“…………….


너 임마 지나치게 긍정적이잖아!!


아니 뭔가 묘하게 삐뚤어져 있어!

대체 어떻게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인간이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거냐?!

뭔가 이상하게 착한 거 같으면서 나쁜 놈이잖아!!


“너…혹시…어렸을 적 꿈이…정치인 아니었냐??”

“어? 어떻게 알았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조차도 없이 대답을 하는 명환이.

어쩐지 명환이의 사상이 TV에서 나오는 나사 빠진 인간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딱 들어맞아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나는 부르르 떨려오는 주먹으로 명환이의 멱살을 잡고 조용하게 윽박을 질렀다.


“너 이 자식아 너는 커서 정치인 하지 마라, 정치인 하면 죽. 는. 다!”

“어? 어? 무, 무슨 소리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명환이의 뺨을 쫙 잡아당겨서 뻘겋게 만들어주고,

꽃의 종류는 신경 쓰지도 않은 것인지 노란색의 국화꽃을 들고 온 바보에게 추가타로 머리에 꽃을 꽂아준다.


“어? 이거 내 고백을 받아준다는 거야?”

“설마. 이거 머리에 꼽고 광년이 놀이나 하라는 거야.”

“……….”


소복을 입고 꽃밭에서 발랄하게 뛰노는 명환이의 모습을 상상해 버리고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아야 했다. 난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해버린 거지….


급속도로 저조 되는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어, 나, 나도 같이…우와악?!”

“튼실아, 물어!!”

“크르르릉-!! 월! 월!!”


은근슬쩍 집 안으로 따라서 들어오려는 명환이를 향해, 내 충실한 몸종인 튼실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들어오기는 감히 어딜 들어와? 이 병원균 같은 녀석이!


결국 명환이 녀석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만 얼쩡거려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누나?」

“뭐가?”

「저 명환이라는 형 말이야.」


덕분에 집에 들어온 나는, 창문으로 밖의 동향을 살피던 양화가, 아직도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명환이의 모습을 보며 하는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없어지지 않을까? 날도 더운데 말린 오징어가 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누가 보면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하겠지. 저렇게 수상한 녀석인데….”


 뭐, 아무렴 어때, 여차하면 진짜 폭력으로라도 해결 해버릴 거니까.


저 자식이 경찰에 끌려가던 우주선에 납치가 되던 내 알 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제발 없어져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누나, 뭔가 잊어버린 거 같지 않아?」

“…………아.”


막 방학식 갈 참이었는데, 양산을 들고 나가야 하잖아.

그러면 또 저놈의 면상을 봐야 하는 거 맞지?


어휴! 성질이 뻗쳐서 증말!!


순간 다시 저 바보가 기다리고 있는 현관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혈압이 펌프질 하듯 마구 솟구쳐 오른다.


“하하, …다시 나왔네.”

“그럼 학교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집에 있으리?”


어쩔 수 없이 양산을 꺼내들고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옆으로 달라붙는 진드기에게 양산으로 찌르기라는 천벌을 내렸다.


“어, 어이! 같이 가!!”

“내가 왜?!”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진드기가 아니라 강력본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문득, 나는 이 자식이 학교도 가지 않고 사복차림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질문한다.


“근데 넌 학교 안가냐?”

“우리 학교는 너네보다 일주일 전에 방학했어.”

“아, 그거 참 유감이네-.”

“뭐야, 그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것 같은 표정은.”


어쩌면 이렇게 이, 삼 주에 한번 꼴로 등장해 나를 귀찮게 하던 이 변태 진드기의 등장빈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진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내 얼굴에 뺨을 긁으며 딴청을 피우는 이 명환.

이내 우물쭈물 또다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뭐, 니가 정 그렇게 싫다면 나도 포기해 줄 수 있어.”


뭐야? 그 장기판 앞에서 한수 물러주겠다는 어르신 같은 말투는?

은근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내 기분을 더욱 다운시켜주는 바보의 면상에 주먹을 날려줬건만, ‘아야, 씨, 왜 때리고 지랄이야?’라는 멍청한 반응에 머리만 더욱 아파진다.


“넌 대체 왜 날 따라다니는 거니? 나 정말 궁금하다.”

“재밌잖아.”


재미는 개뿔이 재미냐?

주먹을 말아 쥐고 한 대 칠 기세로 노려보자, 명환이 실실 웃으며 내게서 두발 멀어진다.


“칫, 좋아하는데도 이유가 필요 하냐….”

“방금 뭐라고 했냐?”

“아냐 아무것도.”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며 다시 질문했지만, 연신 ‘아무것도 아니라니깐’을 연타하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짜증난다. 그리고 나를 더욱 불만스럽게 만드는 건, 골목을 지나면서 이 바보와 비슷한 수준의 바보와 합류하게 된 것이다.


“오! 지영아!! 너도 지금 학교 가는 거…푸악?!”

“와, 와앗!? 지, 지영이!?”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다른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앞서가고 있던 철호가, 쓸데없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나와 명환이를 발견한 것이다.


더불어서 철호와 바짝 붙어서 걷고 있던 유진이가 화들짝 놀라서 철호의 오른쪽 뺨에 펀치를 날리는 바람에 상큼하게 바닥을 구르는 철호가 ‘왜, 왜 때리는 거야…’라며 조상님을 영접하러 요단강을 건넜다.


“허억, 컥…나, 나 아직 안 죽었어….”


죽은 철호의 한이 맺힌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아, 안녕 지영아!”

“으응, 안녕.”


옆에서 쓸데없이 존재감을 풍기는 명환이를 보고 잠시 얼굴을 굳히던 유진이의 모습에, 나도 정말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더불어서 살짝 신발을 들어올려, 슬리퍼를 신은 명환이의 발을 꽈작! 하고 밟았다.


“아으윽!! 썅, 왜 밟아?!”

“나 이제 학교 가야하니까 좀 떨어지지 않으련?”

“…칫!”


눈앞에서 서있는 교문을 보며 투덜투덜하고 머리를 긁으며 사라지는 명환이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내 옆구리를 툭 치는 유진이. 분명 내 설명이 필요한 것이겠지.

정말 귀찮은 일이지만, 지난번에 설명하기 싫어서 도망간 일도 있었고 굳이 계속 유진이에게서 도망을 쳐봐야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픽션을 섞어가며 명환이와 내 관계를 설명했다.


더불어서 내가 저 짜증나는 자식을 얼마나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도.


“헤에- 확실이 지영이 네가 걔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싫어하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 우진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랑은 반응이 천지차이니까.”

“왜 거기서 우진이가 나오니….”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려고 하지만 여우 눈을 하고 키득거리는 유진이의 모습에,

시영언니가 생각나, 그 엄마에 그 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교실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방학식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 무식하게 땡볕 아래에서 진행되던 연설과는 달리 교실 안에서 창문 쪽에 설치된 싸구려 선풍기 하나만 믿고 앉아있는 상태라, 지금이 훨씬 좋은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나 30인이 모여 있는 교실이라고 운동장과 다를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에, 방학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앞서긴 뭘 앞서? 그냥 방학 땡! 하고 보내주면 되는 거지!

TV스크린에서 밑도 끝도 없이 주절주절 할 말을 뱉어내는 교장선생님은, 썩은 동태눈으로  TV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앉아있고, 준비성이 철저한 나처럼 휴대용 선풍기를 사지 않은 아이들은 땀만 뻘뻘 흘리며 무료사우나를 즐기고 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 학생여러분들을 위해….』


아니 그러니까 학생을 위한다면 그만 지껄이고 방학 선고를 하라고!

여기 있는 애들 다 죽일 셈이냐?!


너무나 지겨워서 수마를 견딜 수가 없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자리에서 앉아있는 연지는 진이 빠진 것인지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아니, 연지뿐만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자장가 소리에 교실의 반수가 전멸해 있는 순간이었다.


“흐, 흐흑…진형아…나…나 죽으면 햇볕이 없는 곳에 잘 묻어줘….”

“미린아…크윽, 잠들면 안 돼!! 잠들면 안 된다고!! 우리의 방학은 이제 시작이잖아!!”

“그치만…트, 틀렸어…나, 나는 이제…조, 졸려….”

“자면 안 돼! 자면 안 ㄷ…!!”


“적당히 해라 거기.”

“넵, 죄송합니다.”


짝꿍인 미린이와 함께 졸음을 가지고 설산 로맨스를 쓰고 있는 미린이와 진형이.

덕분에 주변아이들의 눈총을 사다가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의 한마디에 단박 사과한다.


하지만 한마디를 하는 선생님이나, 그들을 노려보는 아이들이나, 미린이나 진형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 있는 정도로 버티고 있다.


우진이도 잠이든 것인지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면, 지난번에 찾아간 ‘우진이의 시골집’이 참 정겨웠지.


전기하나 들어오지 않는 허름한 집에다가, 뒷마당에는 잣은 텃밭이 있고, 산 아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사는 농촌에는 자그마한 구멍가게….


때만 된다면 꼭 한 번, 또 찾아가고 싶은-그런 곳이었다.

방학 중에 또 찾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문뜩, 우진이의 집에 있었던 나는 ‘지영’으로서의 내가 아닌, ‘티아’로서의 나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혹시, 어떻게든 친해진다면, ‘지영’으로서도 그곳에 찾아가 볼 수 있을까-.

아, 방학이 되면 학교에 올 일도 없으니까, 만날 일이 더욱 적어지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급격히 우울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최근 들어서 우울함, 아니 나 자신의 무기력함에 화가 났다.


분명 간단한 것이다. 말을 걸고 다가가서 친해지자.


하지만 왜 그것을 못하는 거지? 왜 안 되는 거지?

의문이 깊어질수록, 내 안의 깊숙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대답이 들려왔다.


왜냐하면 들킬까봐 두려우니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내 존재를 알아차릴까 두려워서.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영원히 멀어질 것 같은, 그런 기분에 두려워서.


정우진이라는 불과 반년전의 뚱보에 무능하고,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바보를 이용해 먹던 ‘이 명환’이라는 녀석을 친구로 둔, 성질 더럽고 남 일에 나 밖에 몰라서, 남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그런 ‘김재은’이라는 또 다른 내가 들킬까 두려워서….


입술을 깨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연유진, 신철호, 그리고 이명환-나에게 다가오는…이 세 사람이.

조금이라도 잘못 말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일궈온 인간관계가, 친분이,

내 모든 것이 엉키고 설 켜서 망가질 것이 분명하다.


…후우 외줄을 타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야.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끌어안은 채, 여름방학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를 들었다.





『냐아아앙-!! 니야아앙~!.』

『뿌미야 언니랑 놀자!』

“갸하!! 언니랑도 놀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집 근처를 서성거리던 명환이의 엉덩이를 걷어차 쫒아내고 저녁반찬거리를 사러 나가는 것을 양화에게 맡긴 뒤에, ‘이쪽으로’ 넘어온 나는 다소곶이 앉아서 냥냥 울기만 하는 새끼고양이와 맞은편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런 뿌미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미와 음화의 모습을 보았다.


어라, 잠깐. 그러고 보니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인형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동이 불편해서 몸을 둘러보자, 굉장한 양의 프릴이 달려있는 인형 옷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들, 날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있었어.


『오에? 티아 언니 일어났어?』

“뿌우-! 언니 일어났다.”

『냐아아앙-!!』


심히 인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고 있는 날 발견한 삼인조가 한 줄로 나란히 앉아서 나를 쳐다본다. 지금 보니까 고양이, 인간, 피규어로 구성되어있는 저 트리오,

…굉장히 잘 어울리지 않는가.


『언니 깼으니까 텔레비전보자.』

“응! 언니 깼으니까 텔레비전이나 보자.”

『미야아앙~!!』

“잠깐, ‘언니 깼으니까 텔레비전이나 보자’ 무슨 의미야 그건?!”


어쩐지 내 의사는 완전히 무시당한 채, 소미의 손에 잡혀 텔레비전 앞으로 끌려갔다.

소파에 앉은 소미와, 그 양 옆에서 앉아있는 음화와 나.

뿌미가 은근슬쩍 내 옆자리로 걸어와 앉는다.


『에, 뿌미도 텔레비전 볼 거야?』

『냐아앙~!!』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미를 쳐다보더니, 이내 TV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모습이 의외로 이 고양이, 물건이라는 느낌을 준다.


『미야앙~!!』

『언냐, 왜 뿌미만 쳐다봐?』

“으, 응? 아무것도 아냐.”


말을 할 줄 알거나 요리를 할 줄 안다던가, 칼을 들고 괴물을 사냥하러 가는 걸 돕는 다든가 하는 굉장한 고양이일리는 없겠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인지, 갑작스레 내 뺨을 핥는 뿌미 때문에 깜짝 놀라야 했다.


『다녀왔습니다.』

『실례합니다.』


평소와 같이 ‘끼익’하고 기름칠 되지 않은 철문을 열며 집으로 들어오는 우진이.


더불어서 내가 요새 기가 허한 것인지,

교복을 입은 채 종이가방을 들고 우진이와 함께 들어오는 ‘나 자신’이 보인다.


………………어라?


다시 눈을 비비고 우진이의 등 뒤를 보았지만, 참으로 순수한 눈빛을 한 채 눈을 깜빡거리는 ‘나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 에?”

『미냐아아아앙~~~♡』

『우지나아아앙~~~♡』

『오빠아아아앙~~~♡』


‘아’하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우진이에게 달려가는 고양이와, 그런 뿌미를 따라 뛰어가는 소미와, 그런 소미의 어께 위에 매달려서 우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드는 음화.

우진이의 등 뒤에 있는 ‘방문자’의 존재는 완전 무시한 채, 분위기에 편승된 소미마저 우진이에게 달라붙어서 비비적거리는 모습이 심히 부담스럽다.


『아하하, 얘들아…손님 왔으니까….』

『오에? 언니 누구야?』

『냐아앙~?』


우진이의 말에 그제야 어색하게 웃고 있는 ‘지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소미.

아, 그러고 보니 소미는 ‘진짜 나’를 만나본 적이 없구나.


『만나서 반가워. 언니는 ‘김지영’이라고 해.』


소미의 눈높이로 무릎을 구부리며, 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지영’, 그쯤에서 나는 지금 ‘내 몸을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양화’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음화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지영’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뿌우- 뿌우-.”

『에헤헤…음화야, 잘 지냈어?』

『오에-! 언니 음화 언니랑 아는 사이야?!』

『응, 맞아. 언니가 음화가 태어나게 해 줬는걸.』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와아! 그러면 언니가 아빠고 오빠가 엄마인거야?!’라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가운데, 우진이는 아직도 소파에서 앉아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올라타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 뭐랄까…너희들 건강검사를 하려고.』


엉? 뭐? 건강검사? 뭐시여 그게?!

눈만 껌뻑껌뻑 뜨며 우진이의 손 위에서 ‘나 자신’앞으로 끌려간 나는, ‘잘 부탁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음화와 세트로 손에 넘겨졌다.


『아, 내 방 써도 돼.』

『으응, 고마워.』


나답지 않게 깍듯이 친절한 얼굴로 우진이를 대하는 ‘지영’을 조종하는 양화.

나와 음화를 양 손에 들고 우진이의 방에 들어와, 종이가방을 내려놓고 방 한가운데에서 다소곶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여전히 불만투성이인 표정으로 뺨을 통통하게 불린 음화와, 그에 못지않게 양화에게 화가나있는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겠다고 나간 우진이 덕분에, 세 사람만 남은 우진이의 방에서 실컷 불만을 토로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뿌우-! 양화 바보! 바보!!”


막상 진짜로 ‘내 몸’을 조종하고 있는 양화를 보고 있는 것은 처음이건만, 나는 그것 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에 화가 나있었다.

멋대로 내 몸을 조종해서 우진이와 접촉을 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에헤헤~ 미안해. 하지만 우진이형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줘….』


‘나’의 모습으로 두 손을 모으며 사죄하는 양화.

그리고 그 순간 검은 색이어야 할 ‘나’의 머리카락이 모근으로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물결이 퍼져나가듯 순식간에 금발로 물들어버렸다.


뭐, 뭐야? 양화가 내 몸을 조종할 때는 머리카락 색도 바꿀 수 있는 건가?!


‘그거 굉장한 기술이잖아!?’라고 감탄을 할 세도 없이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머리카락, 그리고 종이가방에서 딱 봐도 어린애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 청진기와 도구를 꺼내는 양화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설마 그거가지고 ‘건강진단’이라는 놀이를 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뭐야 그게??”

『건강진단 도구.』


아니 그러니까 그 건강진단이라는 것이 ‘장난감’으로 ‘장난감’을 진단하는 것입니까?

현실에서는 현실적으로 현실이니까 현실다운 진짜 청진기를 쓰는 것이고 장난감은 장난감이니까 장난감적으로 장난감답게 장난감으로 건강을 진단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죠?


그딴 건강검진 따위 필요 없어!!


『후아-! 진정해.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진정 안하게 생겼냐고?!

왜 남의 몸 가지고 멋대로 우진이네 집에 찾아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이게 다 ‘누나’를 위해서야.』

“……………에?”


화를 씩씩 내며 설령 청진기라도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노려보던 나는, 양화의 말에 돌처럼 굳었다. 프릴이 잔뜩 달린 내 옷을 벗기고, 속옷 바람인 내 가슴에 장난감 청진기를 대며 방긋 웃는 양화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함께 있고 싶은 거지? 가까이 있고 싶은 거잖아.』

“…어…어?”


‘확-!’ 하고 얼굴로 몰리는 열기.

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양화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양화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두 이해하면서도, 괜히 두근거리며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누나를 위해 태어났어. 그러니까- 나는 누나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을 누나를 대신해서 할 거야.』

“그, 그치만 그러면…!!”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내가 모두 책임져야 되잖아?…라고, 말 하려고 했지만- 여우 눈을 하고 웃고 있는 ‘나 자신’의 얼굴을 한 양화의 모습에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그 말을 도로 삼켜야 했다.


우진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고 소원했던 사람은 나였다.

이제와서 바보같이 부끄럽다고 거절하고, 또 소리쳐봤자-.

또다시 바보가 되는 건 나 자신인 것을.


어째서 나는,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앉아있는 양화에게 화를 내려고 했었던 걸까.


“뿌우-! 싫어!! 난 안 도와줄 거야! 양화 바보! 메롱!!”

『음화야, ‘언니’라고 부르지 않으면 엉덩이에 이 큰 주사를 놔줄 거예요.』


여전히 반발하고 있는 음화에게 상큼한 미소와 함께 음화의 몸통만한 주사기를 보여주는 양화.

뻔뻔스럽게도 ‘언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어쩐지 지금쯤 집에 돌아와서 TV나 보고 있을 언니를 생각나게 만든다.


“히, 히이-!!”


순식간에 상황반전.

창백해지는 음화의 얼굴과, 평소에 늘 당하기만 하던 양화의 회심의 미소가 겹쳐지며, 이내 커다란 장난감 주사기는 음화를 울먹이게 만든다.

서둘러서 달아나려는 음화를 잡고 엉덩이에 주사기를 조준하는 양화.


덕분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꺄아아아-!! 음화가 잘못했어요!! 잘못 했어요!! 후에에엥-!!”

『그러니까, 음화. 부탁이니까 방해하지 말아줘?』


아, 저런 모습을 봐서는 이거 양화가 제대로 해줄지 참 불안한데 말이야….


『잘 되어가?』


차와 과자를 가지고 온 우진이를 향해, 양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으응, 다들 건강해. 특히 음화가….』

『근데 음화는 왜 울어?』


아아, 그건 아마 양화 탓일 거야.

우진이가 가져온 과자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by Sourjelly | 2009/08/02 18:42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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