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푸딩케잌 하우스! #24

 


# 24


“아! 지영아.”

“앗, 시영언…아줌마.”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한껏 화사하게 차려입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영언니와 우리들이 마주쳤다. 예상 외로 유진이는 자신의 엄마가 공원에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인지, 무덤덤한 반응. 그리고 시영언니는 내가 ‘언니’라는 말을 하려다가 애써 ‘아줌마’라고 말하는 모습에 어쩐지 울상이다.


…아, 아니다. 솔직히 나라도 슬퍼할 거 같기는 해.


“수영장 먼저 갈까? 아니면 놀이기구부터 놀고 갈까?”

“밥 먼저 먹자!!”


아침부터 밥 타령을 하는 철호의 목에 팔을 걸며 질질 끌고 먼저 앞서서 공원 저편으로 사라진 유진이의 모습에 시영언니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설마, 저거 자기엄마한테 철호 보여주기가 부끄러워서 저렇게 끌고 간 거야?


“시, 시영씨-!!”


유진이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놀이공원 입구 맞은편의 버스정거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시영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무섭게 달려온다.

그리고 이쪽에 서 있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 것인지, 시영언니가 나이에 맞지 않게 발랄하게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심영씨~”


그렇다. 시영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고자선생님.

지난번에 언니가 아빠 앞에서 말한 ‘재혼상대’라는 게 저 ‘40년 동정의 미스터리함’을 간직한 남자, 김심영이었단 말인가?


무려 마법사와 결혼을 꿈꾸고 있어!! 굉장해요! 언니!!


“왜 이렇게…!!”


젓가락 같이 말라빠진 말라깽이 고자선생님에게 뛰어들듯 그를 끌어안은 언니는, 이내 바람처럼 유연하게 고자선생님의 등 뒤로 돌아서 부끄럽게, 다정하게 허리를 끌어안으며….


“늦었…!!”

“…히익?!”


무릎을 굽히고 번개처럼 그를 들어올려,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습니까아아아-!!!”

-콰앙-!!


등 뒤로 심영선생님의 머리부터 바닥에 내다 꽂았다.

…아아, 훌륭한 저먼 스플렉스다.


“와아, 대단하다 저사람….”

“그치?”


괜히 모르는 척 은근슬쩍 애들을 이끌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유진이가 괜히 도망친 게 아니었다.


“얘들아! 그럼 우리 뭐 탈까?”


놀이공원 중앙의 공원에 들어서자 철호의 입에 생 김밥을 잔뜩 쑤셔 넣은 유진이가 철호를 질질 끌며 나타나자, 연지가 수통과 가위를 꺼내 철호의 입에서 생 김밥들을 잘라내고, 수통을 건네주며 말한다.


“무난한 거부터 타자. 예를 들면 바이킹이라든가 자이로드롭이라든가….”


…저기, 바이킹이나 자이로드롭이 어딜 봐서 무난하다는 겁니까?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듣기가 무섭게 수미의 얼굴이 파리해지며 온몸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물론 나도 그런 극악한 장난감은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한다.

아침부터 그런 물건을 탄다면 어제 저녁에 먹은 식사가 얼마나 숙성 됐는지 볼 수 있을 거 같아.


“나, 나, 난 무난하게 범퍼 카나 탈래….”

“나도 같이 타자 수미야.”


미영이도 이번만큼은 수미와 동감인지 창백한 얼굴로 수미의 손을 잡는다.

하지면 연지와 유진이, 철호 만큼은 그 의견에 반대하는지 불만투성이인 모습이다.


“수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니까,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맞아, 가장 재미있는 거만 골라 타야지.”


우우, 난 그냥 무난하게 다람쥐 통이랑 범퍼 카, 회전목마 타고 싶은데.

덕분에 다들 의견이 제각각이라, 결국 각자 탈 수 있는 수만큼의 티켓을 나누며 실컷 놀고 수영장 앞에서 모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럼 있다가 보자 얘들아!!”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범퍼 카를 타기 위해 표지판을 보는 수미와, 멀리서도 그 위용이 느껴지는 자이로드롭을 향해 달려가는 연지, 수미, 철호.


나는 수미, 미영이와 함께 범퍼카를 타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미영이가 저 멀리서 보이는 고교진기 아이들을 보고 소리친다.


“미린아-!! 다인아!!”

“와아~! 미영이다!! 미영아! …그리고 고교진기라고 부르지 맛!!!”


아니 글쎄 안 불렀다니까.


고교진기쪽은 애초에 ‘놀이기구’만 타러 온 것인지, 가방이 가벼워 보이는 차림으로 넷이서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미린이와 마찬가지로 들떠있는 진형이와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정우는 여자아이들의 가방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가방을 들고 있지만 그네들 설명으로는 ‘도시락’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먹는 거야 너희들??


“그나저나 너희들 왜 별명이 고교진기야?”


부릉부릉 하고 범퍼 카를 몰며 미영이가 몰고 있는 범퍼카를 쾅하고 몰아치는 동안, 옆에서 나와 함께 협공을 하는 다인이에게 질문을 하자, 잠시 입술을 깨물던 다인이가 대답한다.


“지난번 소풍 때 장기자랑을 했던 거 기억나지? 그때 하필 정우랑 진형이가…크윽!!”


방실방실 웃으며 다가와 다인이의 범퍼카의 옆면을 치는 수미 덕분에 잠시 끊겼던 대화를, 다인이가 이어간다.


“…징그러운 장기를 보여줬단 말이야. 문제는 그때 나랑 미린이가 그 장기자랑의 보조였고.”

“무슨 장기였는데?”

“…너 우리 장기자랑 할 때 없었어?”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고 해도…그때 나는 양화에게 몸을 맡기고 우진이의 집에서 도시락 만들기를 하고 있었지.

…손이 작아서 별로 한 건 없고 어디까지나 소미가 다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쨌든 간에 그때의 일이라면….

아마, 양화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나 대신 내 몸을 조종하며 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은 양화일 테니까.


“어, 음…나 그때 좀 배가 아파서….”

“아, 그랬구나. …뭐, 다행이야. 그 역겨운 차력쇼를 안 봐서.”


허헛, 차력쇼였습니까?

설마 페트병 물 마시기라든지, 벽돌 격파, 그 외 등등의 무식한 놀이를 하신 건 아니신지….


“칫, 왜 소풍씩이나 왔으면서 장기자랑이나 하고 앉아 있는 거야…우리학교는.”


투덜투덜 거리며 범퍼 카를 모는 다인이의 차가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사람을 피해 돌아다니고 있는, 왜 범퍼 카를 타고 있는지 모를 정우의 차 뒷면을 들이받았다.


“뿌앙~!! 받아라!!”

“캬아하!! 미영이 너!!”


수미와 미영이는 한창 즐겁게 카를 몰고 있었다.


“푸하! 재밌었어!! 다른 것도 또 타자!!”

“히잉, 나 티켓 없어….”


한참 신나게 놀고 나니, 각자에게 주어진 놀이기구 이용권 세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도 티켓이 남아돌아 다른 것을 타고 놀 계획이 산더미인 고교진기 아이들과는 달리 수영장 이용권만이 남아있는 나, 미영이, 수미는 고교진기 아이들과 헤어져, 놀이공원 한편에 있는, 최근 개장한 수영장으로 향했다.


“얘들아!!!”

“유진아!! 연지야!! 그리고…음, …떨거지 하나야!!”

“신철호라고!! 신철호!! 왜 이 간단한 이름을 못 외우는 겁니까?!”


미영이의 인사말에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었던 철호가 절규하듯 소리친다.

미영이가 설마 철호 이름을 못 외웠을 라고?

단지 철호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우욱-. 아침부터 김밥먹고 청룡열차 탔더니 죽을 거 같아….”


더 이상 성질을 낼 기운도 없는 것인지, 털썩 주저앉아 바르르 떠는 철호의 모습에 실소했다. 아침부터 밥 타령 하고 하드코어한 장난감만 고르더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어쨌거나 막상 도착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입장한 수영장.

가득이나 사람이 잔뜩 찾아오는 놀이공원에서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영장인 만큼, 거대한 넓이의 풀은 수영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와~!’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후우…그나저나….”


온몸에 착 달라붙는 수영복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누군가 날 쳐다보지 않을 까 하는 불안함에 몸이 자꾸 움츠러든다. 특히 남자 수영복을 입었을 때의 아래쪽의 허전함이,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입는 것을 그만뒀던 삼각팬티를 입었을 때의 그때 그 기분을 상기시켜 창피했다.


“으으 기분 나빠….”

“자자, 지영아!! 뭐해! 빨리 안 나오고!!”

“아, 아, 알았어!! 나가면 될 거 아냐!!”


탈의실 밖에서 날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해서 나간다.

아, 씨, 미, 민망하잖아…!


“오늘 휴일 아니었나? 사람이 별로 없네?”

“그것도 그럴게 아직 방학, 휴가시즌이 아니잖아.”


정말로 다행인 것은 수영장은 그다지 붐비는 수준이 아니었다.

6월 말기는 학교에서 소풍을 오기에도, 방학이나 휴가를 한 사람들이 놀러오기에도 애매한 시즌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들의 휴가 시즌과 어린이들의 방학시즌이 겹칠 때 즈음이면 이 거대한 풀도 인산인해로 징그럽게 바글바글 거리겠지.

개미떼처럼 와글와글 모여 있는 꼬마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각양각색의 수영복을 입고, 풀로 뛰어드는 아이들.

그 뒤로는 홀로 남자인 덕분에 호강하고 있는 철호가 아직 풀에 뛰어들지 않은 채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어째서인지 나도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넌 여자가 아니잖아?

넌 아마 안 될 거야.


.

.

.


“하아, 덥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에 비해 나는 가운을 벗기 싫어 구석에서 쪼그리고 있는데, 유진이와 미영이가 나를 자꾸만 부추긴다.


“지영아 뭐해? 안 들어오고!!”

“얘는 뭘 그리 꽁꽁 싸매고 있어?! 니가 번데기니? 나비될 시간만 기다리고 있어? 얼른 가운 벗고 들어와!!”

“…나, 난 수영 못해!!”

“에이 거짓말!! 얼른 들어와!!”


싫다고!! 아까부터 힐끔힐끔 누가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진짜 벗기 싫어!!

결국 보다 못해서 물에서 나온 유진이와 미영이가 징징 울며 반항하는 나를 끌고 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때였다.


“꺄하하~ 심영씨! 받아랏! 끼얏호~!!!”


40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반짝이는 피부와 매끈한 몸매를 가진, 표범가죽무늬의 대담한 비키니를 입고 풍만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나타난 시영언니가 고자선생님의 목덜미를 잡고 빙빙 돌리며 수영장으로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악-!!”


공중을 두 바퀴 뱅그르르 돌며 물속으로 아무렇게나 ‘-첨벙!!’하고 빠져버린 고자선생님이 창백한 얼굴로 물위로 떠오르자, 그 위로 몸을 날리는 시영언니.


심영선생님이 비명을 지를 세도 없이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푸하!! 아하하~!! 아하하하!!”

“…푸헉!! 켁, 콜록! 콜록!! 하, 하, 하, 하!! 콜록…! 하. 하. 하. 하!!”


어린아이 같은 웃음으로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먹이의 목을 끌어안은 채 비비적거리는 시영언니와, 말 그대로 수명이 삼년은 깎인 듯, 죽을상으로 같이 웃는 고자선생님.


자신의 엄마가 굉장한 포스와 존재감을 풍기며 나타난 덕분에 할 말을 잃고 두 사람을 쳐다보는 유진와, 굉장한 볼거리에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미영이 사이로 빠져나온 나는,

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또 다른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저기 말이야 지영아.”

“히, 히익?!”


그곳에는 이미 오래전에 소외당해서 그 구석에는 자리를 차지하고 혼자 놀고 있었던 것인지 모를 철호가 시영언니와 고자선생님을 보며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유진이랑 결혼하면 저런 꼴로 살게 될까….”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1 이 벌써부터 결혼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도 않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


결국 수영장에서 주변만 맴돌던 나는,

시영언니와 심영선생님의 멜로극(?)에 익숙해진 유진이와 미영이에게 다시 한 번 물로 끌려가 강제로 빠지는 바람에 몸이 놀라, 다리에 쥐가 나서 익사할 뻔 했다.


덕분에 다시 물에 끌려가는 상황을 간신히 모면은 했지만, 덕분에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수영장 구석에서 몸을 말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여어, 건방진 김지영 양.”

“하. 하. 하. 안녕 하세요 재수 없는 심영선생님.”


수영을 끝마친 시영언니가 샤워를 하러 간 사이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따듯한 커피를 손에 쥔 채, 갖은 폼이란 폼은 다잡고 있는 고자선생님과 분노의 신경전을 벌인다.


스트레스를 풀러 온 수영장에서 갖은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를 다 받은 우리 두 사람은 쓸데없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시비를 걸며 이 갈 곳 없는 분노를 해소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심영선생님 쪽이 먼저 지쳤지만….


“하아, 그만두자. 피곤해서 너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그럼 데이트 끝나면 집에 가려고요?”

“그럼 집에 가지 어딜 가냐?”


호오, 그 나이에 굉장한 건전교재를 하시는군요.

요즘 애들이 당신 같으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뭘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대단하시네요. 시영언니랑 교재라니….”

“…어떤 의미로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너라는 게 고맙다.”


그거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나저나 왜에요?”

“응? 무슨 소리야?”

“시영언니의 어디가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죽을상을 하면서도?”


고자선생님의 얼굴이 잠시 구겨졌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내 수심에 빠진 채 자신의 턱을 부여잡고 깊게 고민을 한다.


이봐요 아저씨, 당신 애인이라고요?

왜 자기 애인 장점을 이야기하는데 고민을 하는 거야?!


“아, 그 뭐랄까. 그런 거 있잖냐.”


두 손으로 호리병 모양으로 위아래를 움직이며 흔들더니, 이내 무언가를 쥔 자세를 취하고, 물컹물컹하고 만진다.


“풍만하잖냐, 매끈 쭉쭉하고, 보기만 해도 두근두근 하고. 남자의 로망이라고.”

“그냥 젖소랑 결혼하지 그러세요.”

“젖소는 털이 너무 많아.”

“청소년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요.”


‘털은 머리랑 거기 털만으로도 충분하다고’라는 굉장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저씨에게 기가 질려버렸다.

이 인간이 나이 40줄이 되도록 마법사인 이유를 알겠다.


샤워를 끝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시영언니에게 끌려가는 심영선생님에게 안녕을 고하며 먼저 짐을 싸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아아!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오자!! 얘들아!”

“응!!”

“기회만 된다면 말이지….”

“캭! 유진아 너 재미있게 보내놓고 왜 그래?!”

“저는 괜히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만….”


다들 왁자지껄 떠드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잊어버린 사실이 떠올라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결국 우진이를 이곳으로 끌고 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이 기회는 아닌 법.

다음에는 꼭 우진이에게 말을 걸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렇게 양화와 수영복이 숨어있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빨간 노을은 점점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치이이- 치이이이-.』

『치이이- 치이이이-.』


놀이동산의 피로로 일찍 잠이 들었던 그날 밤.

익숙하지 않은 요란한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치이이- 치이이이-』


먹물을 섞은 듯한 푸른색을 띈 밤하늘.

아직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나는, 어둠이 하늘을 가득 매운, 늦은 밤의 하늘을 올려 보았다.


『치이이- 치이이이-』


초승달조차 보이지 않는 밤.

별빛만이 하늘을 가득 매우며 반짝이는 그 밤은, 바람결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검은 숲의 그림자를 선사했다.


『치이이- 치이이이-』

“…에?”

『…아, 깼어?』


고개를 들자, 내 왼쪽에 앉아서 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진이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쪽 어께를 감싸오는 따스한 온기와 몸을 기대오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려보니, 잠이든 음화가 나를 끌어안은 채 행복한 얼굴로 옹알옹알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언니…으웅…언니….”

“…………에??”

『푸후…하하…음화는 아까…잠들었어. 티아 네가 자는 동안 너랑 같이 놀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계속 아쉬워했었는데…, 어떻게 화해한 거야?』

“…………….”


우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생소한 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그득하고, 가로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각종 벌레들의 노랫소리와 이름 모를 매미의 울음소리였다.


-졸졸졸졸….


작게나마 들리는 희미한 물 흐르는 소리.

등 뒤에서 작게나마 빛을 밝혀주는 촛불의 빛으로, 내게 몸을 기대고 있는 음화의 몸 저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낙숫물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바위 구덩이에서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흘러넘친 물이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듯 한,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든 바위 연못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치이이- 치이이이-』


여전히 이름을 알 수 없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7월의 향수를 느끼고 나와야 할 매미가 왜 벌써부터 여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세 사람만이 허름한 집의 마루에 앉아 어둠 너머를 살피고 있었다.


『미안해, 놀이공원…가고 싶었던 거지? 이번 주에 여름 맞이 이벤트로, 수영장 개장 한다고- TV에서 나오던데.』

“아…으….”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서둘러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얼굴로 몰리는 열기에 서둘러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가슴이, 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핫…미안, 내가 무능해서. 어떻게는 노력해봤는데- 역시 안 될 것 같더라고.』


겨우 내가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고 날 위해서 노력까지 할 필요는 없어 이 바보야.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바보의 말에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별의별걸 가지고 미안해하는 구나 이 바보는.


『그래서 말인데…자, 여기에 올라타.』


그것은 작은 나뭇조각 배였다.

하지만 한 사람, 아니 한 피규어가 타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조각배.

우진이의 손에 의해 깎인 것이 분명한 그것은 서둘러서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투박하게 깎인 모습 그대로, 내가 앉을 수 있는 곳만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아우…우우….”


우진이의 손에 안겨, 짙은 푸른색의 가디건의 주머니 속에서 그의 외투를 쥐고 잠이 든 음화를 뒤로 한 채, 조각배의 위에 발을 들여놓았다.


-졸졸졸졸….


나무판을 이용해 산 위에서 끌어오는 듯 한 그 작은 물줄기가 따라 내려와, 고이는 그 곳은 작은 바위연못.


-찰방!


그 중앙에 띄워진 조각배는 부드럽게 흔들리면서도 바위연못의 가운데서 자리 잡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조용한 호수 위에 띄운 배처럼, 쪼르르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RC보트를 띄운다던가, 그런 것 같은 건 아니지만…약속했었지? 여름에…배 만들어주기로.』


…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바보 같은 일방적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바보 같은 계획을….


『여기 라디오도 있어.』

“푸훗! 뭐야 그게…저리 치워.”


분위기고 뭐고 완전히 깨버리는 팔뚝만한 구식 라디오의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라디오라면 필요 없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벌레들의 노랫소리.


그것은 이미 훌륭한 한편의 라디오 방송이었으니까.


『우리 동네에서 버스타고 두 시간, 그리고 산길로 한 시간 반 정도만 걸어오면 도착 할 수 있는 곳이야.』

“에? 그 말은 여긴….”

『우리 할아버지 집이야. 3년 전에 돌아가신….』


촛불을 제외한다면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산자락 어디에 붙어있는 지도 모를, 그런 외딴곳에 집을 짓고 살던 우진이의 할아버지가 사셨던 곳. 굉장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굉장히 멀리까지 걸어 나와야 하는 시골.


『아침에 자고 있는 너, 그리고 소미와 음화를 데리고 이곳에 올 때, 소미랑 음화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몰라. 네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하고.』


‘이곳까지 오는 길, 경치가 굉장히 좋으니까.’라며 음화에게 즐거운 구경을 시켜준 것에 대해, 기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우진이.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고 가늠해본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소미랑 매년 한번쯤은 찾아왔어. 그리고 혼자서는 두 달에 한번씩, 바쁘신 와중에도 가끔 찾아오시는 아버지랑 번갈아서 청소하러 오기도 했었고. 반겨주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그래도 할아버지 집이니까.』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 미소를 보며, 나는 조용히 사죄했다.


“…미안해.”


뚱보라고 무시해서 미안해.

바보라고 괄시해서 미안해.

미련하다고 욕해서 미안해.


…하고 싶은 것만 멋대로 떼를 써서 미안해.


『뭘,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우진이는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by Sourjelly | 2009/07/29 19:28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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