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푸딩케잌 하우스! #23

 

# 23


계획이란 녀석도 막연한 녀석이었건만, 행여나 이쪽의 마음이 들킬까 전전긍긍 노심초사 하며 별다른 성과 없이 이 주일을 까먹고 나니까 어느새 방학이 코앞에 다가오는 6월의 초순.

햇볕이 슬슬 면도칼처럼 따가워져서 봄옷입기를 때려치우는 시기였다.


평소처럼 점심시간에 맞춰 삼삼오오 둥그렇게 모인 아이들 사이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중 기회를 노리는 나에게 최대의 찬스가 왔다는 사실을 수미와 미영이의 입으로 듣게 되었다.


“지영아, 그러고 보니까 다음 주 옆 동네 놀이공원 여름 이벤트 한다던데-.”

“맞아, 맞아!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 동네 백화점도 여름 맞이 대박 세일하잖아! 여름옷 잔뜩 사아지!!”


신이 나서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방실방실 웃으며 이야기하는 수미와, 여름옷 살 생각만 머릿속에 한가득인 미영이. 연지와 유진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인지 싱글벙글인 상태이다.


“방학까지 앞으로 20일…20일…20일….”

“방학까지 앞으로 20일 하고 3시간….”

“그딴 거 셀 시간에 공부를 해라 이 머저리들아.”

“뭐 어때, 쇼핑은 여자애들이나 좋아하는 거고….”


더불어서 옆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연지그룹’의 연장선(?) 이라고 부를 수 있는 4인조 콤비인 ‘반장 진형’, ‘부장 미린’, ‘독서 다인’, ‘나태 정우’의 남둘 여둘 ‘고교진기’의 애들도 각자 한마디씩 한다.


“고교진기라고 부르지 마!!”

“어라, 미린아, 갑자기 왜그래?”

“아, 아냐, 방금 누가 우리보고 고교진기라고 부른 것 같아서….”


…………헉, 독심술인가?


“너부터 스스로 그 단어를 사용하면 무슨 소용이니….”


다인이의 한마디에 히잉-하고 기가 죽어버린 미진이.

그리고 그런 미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진형이…아, 그러고 보면 저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콤비다.

언제나 둘이서 나란히 앉아, ‘방학까지 남은 시간은 몇일 몇시간….’하고 중얼거리며 앉아있는 모습이나, 따스한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나란히 앉아서 반쯤 기울어진 채, 서로 기대고 일광욕을 하며 잠들어있는 모습이나, 성격이나 취향마저 비슷하다보니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은 이 둘이 연인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은 늘 그걸 부정하고 있지만.


정말로 미스터리한 것은 언제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칼이 서려있는 이다인과 방약무인하기 그지없는 태정우, 이 두 사람이 진짜로 연인사이라는 사실이다.


“넌 쇼핑하러 안 갈꺼냐 다인아~”

“닥쳐, 또 이상한 옷, 그것도 내 옷 사려고 그러지.”

“속옷도 옷이 잖냐-수영복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왜 평상복은 없냐고.”

“…음, 내 취향이 아니니까?”

“놀고 있네.”


마치 나무늘보와 사자를 보는 기분이다.

다른 아이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인지, 땀을 흘리며 웃는다.


“그래서 지영아, 내일 쇼핑가지 않을래? 놀이공원도 초봄이라고 여름이벤트를 하고 있으니까, 수영장도 시범 운영할거 같은데, 여름옷도, 수영복도 사러갈 겸.”

“아, 으응!!”


일주일이다. 

일주일 내로 우진이를 끌어들여서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침대에 누워, ‘저쪽’으로 넘어갈 채비를 했다.





“우진아, 너 다음 주에 뭐해?”

『……? 무슨 의미야?』

“아니 글쎄 다음 주에 뭐 하냐니까?”

『글세, 아르바이트하고…운동하고…소미 돌보고…피규어 깎고…뭐, 언제나 똑같지.』

“………….”


딱히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다.

나 때문에 추가된 ‘운동하기’ 항목을 제외하면 발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바보였다.


“다음 주에도 똑같은 일만 할 거야?”

『으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올해는 이상하게 돈이 좀 빠듯해서, 어디 갈 여지도 없고….』


결국 나오는 대사는 ‘돈이 없어’다.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부모님과 언니에게서 용돈을 얻어다 쓰는 내 처지에 우진이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되지 못해 차마 반박을 하지 못하고 목으로 도로 넘겨버린다.


우우,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 달에만 푸딩 값으로 3만 원정도 쓴 거 같아.』


…씨이!! 그럼 내 탓이라는 거냐?!


『음화가 푸딩을 조금 많이 먹다보니까…하하하….』


옆에서 오물오물 거리며 푸딩을 끌어안고 앉아있는 음화의 뺨을 마구 잡아당겼다.

한 점의 양심의 가책도 없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앉아서 푸딩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끼냐아-!! 어니! 아바! 아파아아~~!!”

『그렇다고 그렇게 괴롭히면 안 되….』

“시끄러!! 이 바보야!!”

『왜 화를 내고 그래….』

“언니 미어…후우에에엥~!”


뺨을 잔뜩 잡아당겨져, 뺨이 복숭아가 된 음화가 울며 우진이의 방 밖으로 뛰쳐나가자, 방안은 한동안 침묵으로 휩싸였다. 뛰쳐나간 음화와 음화를 꼬집던 내 두 손을 번갈아 쳐다보던 나는, 문뜩 우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보는 차가운 눈동자를 한 우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뭐, 뭐가?”

『왜 그렇게 애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

『솔직히, 티아 네가 음화를 싫어하는 것도, 음화가 가끔씩 너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음화가 그렇게 잘못했어?』

“아…아아…저기…잠ㄲ.”

『티아는 똑똑하잖아. …착하잖아. 그러면 음화가 가끔 철없이 구는 거 봐줄 수도 있잖아. 어째서 네 동생인 음화한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야?』

“그게 아닌데….”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목구멍에서 콱 막힌 듯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변명에, 눈앞에 흐릿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폭포에 숨이 답답해지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변명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 애초에 네 잘못이잖아.』

“………….”

『그까짓 푸딩 때문에 애를 그렇게 울리는 게 잘하는 짓이야?』

“………………….”


대답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방울을 숨기는 것만으로도 벅차, 도망치듯 인형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되는 거야.





「누나 무슨 일 있었어?」

“…………….”

「…누나?」


모처럼 한가득 기대한 채 우진이에게 다가가려 했건만, 계획이 처음부터 완전히 엉켜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잘못이었기 때문에 더욱 우울해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기분에 자꾸만 배게를 쥐어뜯는다.


“끼으응…뀨으응….”


책상 밑의 종이상자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올려보는 꼬미, 내 기분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다.


「누나, 왜 그래?」


대답이 없는 내게 다가오기 위해 책상에서 뛰어내려, 베게 곁으로 다가온 양화.

금색의 짧은 머리카락과 은색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나를 살피며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에?」


손을 가져가, 양화의 뺨을 만졌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양화의 머리에, 그 작은 면적의 뺨이 보드랍게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내가 답답한 것일까,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양화를 끌어안았다.


「역시 누나 이상해…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양화야.”

「응?」

“…음화 불러줄 수 있어?”

「으, 으응. 그런데 누나 음화 싫어하지 않았어?」

“괜찮으니까….”


내 품에서 뛰어나와, 책상 밑 꼬미의 종이상자 집 뒤편으로 달려가는 양화, 그리고 잠시 후에는 아직도 훌쩍이며 울고 있는 음화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훌쩍…키응…우우…」

「누나, 여기 데려왔어.」

“………….”


양화와 음화 모두 손으로 안아 들어, 책상 위에 앉힌 나는, 얼굴이 눈물범벅인 음화의 뺨을 손으로 닦아주며 아직도 빨갛게 달아있는 뺨을 만져줬다.


「어니, 언니 미어…훌쩍…흐에엥….」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양화는 두발 세발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음화를 번갈아서 쳐다보고, 나는 그런 양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음화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미안해.”

「욱, 히끅! 후에에엥-!!」


내 블라우스를 붙잡고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음화.

나는 그런 음화의 머리를,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쓰다듬어주며 토닥였다.


한참을 달랬을까, 빨간 눈으로 내게 매달려있는 채로 가만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내 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음화가 내 가슴주머니에서 들어가, 블라우스에 뺨을 비비적거린다.


그런 음화를 보며 피식 웃는 양화, 내가 내민 손에 올라타, 어께위로 올라온 양화는 다들 잠들어버린 밤의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주먹만 한 파인에플 푸딩을 꺼내, 양화와 음화에게 한 스푼씩 나눠줬다.


「저기…누나, 독은 없는 거지?」


얄미운 소리를 하는 양화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여주고 말이다.


「하구우-. 하구우-.」


신나게 울었던 탓이라 배가 많이 고팠던 것일까, 여전히 빨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열심히 푸딩을 먹는 음화와, 내가 티아가 되기 전에 이미 푸딩을 먹었기 때문인지 음화의 눈치만 보면서 한 조각 한 조각씩 떼어먹는 양화.


「저기, 음화야. 이것도 먹어.」

「우으-! 하구우-! 우으!」


입안에 한가득 푸딩을 물고 우물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음화에게 ‘안 뺏어 먹으니까 괜찮아’라며 주춤하고 한 발짝 멀어지는 양화.

이제는 대충 분위기가 어떤지 눈치를 챈 것인지 푸딩에는 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음화를 쳐다보는, 테이블 위의 내 손 옆에 앉아, 함께 음화를 쳐다본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야?」

“………………푸훗, 아냐 아무것도.”


말하기 민망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음화가 푸딩을 많이 먹는 다는 이유로 괴롭히다가 우진이에게 혼났다는 소리를 어떻게 하냐?


「하구- 요구, 요구르뜨-!!」

“여기 있어, 천천히 먹어.”


평소에 우진이가 만들어주던 방식으로, 150원 짜리 요구르트에 길이는 반으로 자른 가는 빨대를 꽂아 준다. 어느새 양화나 음화에게 요구르트를 줄때도 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서 주고 있었다.


「하우-!! 맛있쪄!!」

「한 일주일은 굶은 얼굴이네.」


기뻐하다 못해 뺨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먹는 음화의 모습에 질린 양화가 말했다.

…물론 나도 동감이다.


“아르르…뀨응…!!”


어느새 쫄래 쫄래 따라온 것인지 모를 꼬미가 앞발로 내 발을 톡톡 건드리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쓰다듬어줬다.


「저기, 슬슬 본론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뭘 꾸미는 거야 누나?」


여전히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음화와는 달리 할 일이 없었던 양화가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본다.

얘는 누가 들으면 내가 세계정복이라도 꾸미는 줄 알겠네.


“아무것도 아니래도….”

「혹시 그 놀이공원 일 때문이야?」

“아. 무. 것. 도. 아. 니. 래. 도?”


귀찮게 자꾸만 캐고 들어오는 양화에게 다리 찢기를 시전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정곡을 찔려서 이러는 게 아니다.


「꺄아아아아악--!! 누, 누나!! 나 찢어져!! 찢어져!! 끼야아아악-!!」


그냥 존내 찢는 거다.

다시 한 번 말하는 거지만, 이 누나가 정곡을 찔려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이 누나가 다 애정이 있어서 찢는 거다.


「히이, 언니 무서워!! 후에에엥!!」


…아, 의도치 않게 음화를 다시 울려버렸다.







“와아! 지영아! 이거 봐, 이 옷 나랑 엄청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으, 으응!!”

“캬아-! 이거 봐 얘들아! T팬티다!! 유진이한테 잘 어울리겠네!!”

“꺅! 미영이 변태! 하하하하!!”


주말에 모이기로 한 약속을 토대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지 못하게 된 연지를 제외한 수미, 미영이, 유진이와 나는 대박세일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백화점에서 여름옷과 속옷을 고르며 왁자지껄 이다.


“저기, 저는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까….”


수많은 옷들을 짊어지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철호가 처량하게 중얼거리지만, 그 누가 철호를 신경 쓰랴? 옷 고르느라 바쁜데. 그나마 신경써주고 있는 사람은 철호를 가장 싫어하는 인간 1호인 나와 2호인 유진이 정도일 뿐이다. 정말 의외의 상황이 아닌가?


…물론 요새는 유진이가 철호를 싫어하는 정도가 조금 줄어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아, 홀로 옷을 고를 적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여럿이서 옷을 고를 때는 굉장한 피로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에도 다른 아이들이 옷을 고르는 것을 지켜보고 감상을 말해줘야 했고, 내 옷을 다 고르고 다른 옷을 구경 가고 싶어도, 아직 옷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기다려줘야 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도 옷을 고르며 생기는 망설임에서 소모되는 에너지 자체가 컸다.


아, 이래서 언니가 쇼핑만 갔다 오면 잠이 드는 거구나.


“지영아, 이거 너랑 잘 어울릴 거 같다.”

“어, 어? 아-.”


막 여름옷을 고르고 수영복 섹션을 지나가던 중, 순간 유진이가 나를 붙잡으며 내 가슴팍에 흰색의 천 쪼가리 한 장을 가져간다.

…으헉, 수영복이다.

그것도 원피스, 여. 성. 용!!


그나마 다행인 것이 비키니가 아니라는 사실인데, 그것에 기뻐할 겨를이 없다.

나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가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남자가 아니라면 여성용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과,

매끈하게 몸매를 드러내게 될 것이 뻔 한 여성용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용이라는 것 자체는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이게 몸매를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으악! 상상만 해도 민망하다!


애초에 남성용 수영복이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것이라고는 해도,

그게 야하다고 생각할 남자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남성용 수영복에 주목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하지만, 여성용 수영복이라면 어떨까?


평소에도 온몸을 가리는 긴 치마와 두꺼운 옷을 즐겨 입었던 나에게 엄청난 부담을 실어주고 있는 이 새하얀 천 쪼가리에 나는 깊은 한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와하하! 이 비키니!! 미영아 이거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엣햄! 내가 한 몸매 좀 하지!!”

“꺅! 재수 없어!!”


조용히 무난한 형태의 수영복을 고르고 있는 수미의 모습이 눈에 띄어 쪼르르 다가가자, 내가 다가올 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화들짝 놀라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에헤헤…나, 나는 야한 건 못 입으니까.”

“아하하…나도 무난한 게 좋아.”


좋아, 이로서 ‘무난파’동맹 결성이다.

저쪽에서 비키니를 고르고 있는 미영이와 유진이를 내버려두고 최대한 수미와 달라붙어있는 것이 내게 있어서 최대의 생존방법이다.


“저기…지영이 너는 무슨 색이 좋아?”

“에? …아, 글쎄… 하얀색이 좋지 않을까.”

“으응, 그것도 그럴게, 지영이 너는 피부가 되게 하야니까.”


…병원에서 거시기 잘리고 몇 개월간 고생하면서 만들어진 피부라고는 죽어도 말 못한다.


“나는 이거, 연두색 고를래.”

“아, 그거 잘 어울려.”

“에헤헤, 고마워! 그러면…비치 랩 스커트랑 비치가운도 고르러 가자.”


에? 비치 랩 스커트? 가운?

그게 뭐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수미의 뒤만 졸졸 따라가 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수영복 위에 걸치는 치마와 같은 거구나.


“작년에 랩 스커트랑 가운을 안 골랐다가…미영이한테 당했거든….”

“아, 미영이랑 중학교 때 같은 학교였어?”

“으응, 3학년 때 만났지만….”


여러 가지로 놀라운 것이 인연이라는 걸까.

이것저것 둘러보다보니, 긴치마와 긴 가운도 보여, 그것을 고르려고 하니 어느새 수영복을 다 고른 것인지 모를 유진이와 미영이가 달려와 나를 방해한다.


“안돼~!! 그렇게 긴 가운이랑 랩 스커트를 같이 입으면 보기 흉하잖아!”

“맞아 맞아, 수미야, 너도 너무 수수한 거 고르지 말고 좀 예쁜 거 골라봐!”


얘들아, 우리는 그런 거 필요 없어!!

눈물을 흘리며 유진이와 미영이에게 끌려가는 수미와 나였다.


여차저차 어떻게든 야한 수영복을 고르는 것을 방어해내고 최대한 몸을 많이 가리는 수영복으로 고른 뒤, 이곳저곳 더 둘러본 우리는 철호가 얼굴이 퍼렇게 변해 죽어가는 모습에 그쯤에서 쇼핑을 그만두기로 하고 해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아, 지쳤다.”

「뿌아-나도 지쳤어-.」


핸드백에서 숨어있던 양화도 지친 것인지 꼬물꼬물 기어 나와 한숨을 쉬고, 양 손에 수많은 옷가방을 들고 있는 나도 신발을 벗자마자 현관 앞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아, 너무 힘들다.


「푸딩먹자 누나! 딸기 푸딩!!」

“알았어, 알았어-. 하아, 죽겠다….”


욕실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담은 뒤에 부엌으로 나와 딸기 푸딩을 뜯어 작은 쟁반위에 놓고 양화에게 준다.


이미 옷을 다 벗고 세면대의 욕조에 들어갈 준비가 된 양화가, 물위에 동동 떠있는 쟁반위의 푸딩을 먹으며 놀고 있을 때, 나는 욕조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고 백화점에서 얻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껏 푸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치는 것이다.


“하아, 기분 좋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아직도, 우진이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했다.


나는 어째서, 티아일 때는 우진이에게 그렇게 태연하게 말을 걸었으면서, 왜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지?


그냥 말을 걸면 좋잖아.

“다들 놀이공원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하고…

그런데 어째서, …거절당할까봐?

속마음이 들킬까봐?


한편으로는 ‘티아’인 나에게 화가 나있던 우진이의 얼굴이 떠올라, 더욱 우울해졌다.

이대로는 우진이를 놀이공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조차도 불가능하잖아….


“하아, 몰라 몰라….”

「에? 뭐가?」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나는 친구들과 모이는 그 다음 주의 주말 당일까지도 우진이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햇볕이 밝게 내리쬐는 오전의 아침이었다.


“지영아!!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

“아, 알았어! 얘들아!!”


신이 나서 매표소를 향해 뛰어가는 미영이를 쫒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그리 기쁘지 못했다.


by Sourjelly | 2009/07/28 12:44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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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홍월 at 2009/07/28 12:52
이거시 바로 연참?
Commented by Sourjelly at 2009/07/28 13:45
연참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병원에 있다가 일주일만에 돌아와서 올리는 거기 때문에 ㅠ.ㅠ;
Commented by 홍월 at 2009/07/28 13:50
병원에는 왜...다녀 오셨나요...이제 괜찮으신건가요?
스티로폼 용해제라도 맞으신건가요(요건농담입니다)
Commented by Sourjelly at 2009/07/28 23:46
계단에서 굴러서 오른팔 깁스 했어요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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