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8일
티아☆푸딩케잌 하우스! #22
# 22
그 일이 있은 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우진이의 주머니를 마구 물어뜯던 그날 밤을 어떻게 보낸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막상 잠에서 깨고 나니 허무한 마음에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강아지와 고양이를 데리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줬던 우진이는, 양화의 멋대로 선택된 강아지를 집에 남겨두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강아지를 끌어안은 채, 우진이에게 손을 흔드는 ‘나’를 대신 조종하고 있는 양화.
양화는 우진이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내가 숨어있는 우진이의 주머니에서 끝내 눈을 떼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 화가 많이 나 보이던데….」
그때 당시에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찌하지 못했건만, 우울하고 피곤한 마음에 침대에 지쳐 쓰러져 잠에 빠져든 이후, 나는 급격히 가라앉은 흥분으로 인해 제정신을 찾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애초에 ‘진짜 여자인 상태인’ 나를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단 세 번밖에 없는 우진이에게 있어서 나에게 고백을 한다는 것 따위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나 혼자 기대해서 혼자 멋대로 신이 났다가 결국 혼자서 제풀에 주저앉은 거잖아.
웃기지도 않아서 억울함에 눈물이 났다.
대체 그 자식이 뭐 길래 나는 이렇게 바보짓을 하고 앉아있는 거지?
몇 개월 전만 해도 잉여인간에 쓸모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던 인간 돼지였던 바보다.
어째서 그런 바보에게 기대를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는 거야?
“끼잉, 끼잉-! 뀨응~!!”
물론 너무 화가 나서 양화가 어디에다 박스를 놓았는지 조차 신경 쓰지 않고, 귀를 틀어막은 채 울며 잠들었던 나는, 책상아래에서 상자에 앞발과 머리만 쏙 빼놓고 있는 연한 갈색 털의 강아지를 발견한다.
양화가 멋대로 선택해서 멋대로 데려온 강아지.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눈이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며 엄마를 찾는다.
“…………….”
「미안, 멋대로 골라서 데려와서….」
쓸데없이 걱정은 많아서, 내가 강아지에게 시선을 보내자마자 중얼중얼 변명을 하는 양화.
바보같이, 그런 걸로 화를 내기에는 내 기분이 너무 좋지 않다.
“꺙! 꺙꺙!!”
초롱초롱한 눈이 금방이라도 터질겉 같은 강아지.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손길로 움찔 움찔 다가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 좋은 듯 스스로 머리를 움직이며 내 손에 몸을 비벼온다.
“끼으응~! 꺄으응-!!”
「아직 아기니까, 배가 고프지 않을까….」
생후 1개월이 됐다던 주먹만 한 크기의, 보슬보슬한 털의 강아지.
양화의 말에 나는 양 손으로 강아지의 앞발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뒤에, 품에 끌어안고 상자 안에 함께 받아온 우유병을 입에 물린다.
우유병 꼭지를 물자마자 눈을 감고 꼴깍꼴깍 마시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가슴 속 어딘가가 뭉클 하고 두근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진이 형이 정말 미안하데.」
“………….”
「아는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해봤는데, 다들 다른 동물을 키우거나 키울 여건이 안돼서, 하지만 강아지랑 고양이를 동시에 키우는 것도 조금 그렇고, 게다가 강아지랑 고양이니까, 서로 싸울까봐 걱정도 돼서, 고심한 끝에 누나에게 전화한 거라던데….」
내가 알기로는 우진이가 운동하던 그 겨울 방학,
그 겨울 방학 내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소미를 돌보며
운동과 피규어 깎기에만 열중했던 그가 아는 사람이라….
어느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필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본 정도겠지, 그리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고민하다가 날 떠올린 걸 테고.
역시 고민하다가 또 고민하다가, 결국 답이 없어서 마침 자신에게 찾아온 양화에게 물어본 거겠지.
또 바보의 바보 같은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버릴 생각은 못하니…너무 착하잖아.
“시간이라도 돌릴 수 있다면 어제로 돌아가고 싶어.”
「에? 어째서?」
“그때는 너한테 맡기지 말고, 내가 직접 나가서 우진이의 얼굴을 잡고-.”
순간 반짝반짝 희망으로 가득 차는 양화의 눈동자.
두 손을 꼭 쥐고 무언가 굉장히 기대하는 듯이 나를 올려다본다.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아마도 내 대답은 그의 희망사항에서 한참 안드로메다로 떨어져있는 물건일 것이다.
“콱!! 하고 면상에 무릎을 꽂아 넣어 줄 거야. ‘그딴거 물어보고 싶으면 학교에서 하라고!!’라고 외치면서 말이지.”
「…………….」
순식간에 기대하고 있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거 참 누나답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외면하는 양화. 어째서 날 외면하는 거야 이 자식아. 이게 내 진면목이라고!!
명색이 ‘또 다른 나’ 라는 놈이 그걸 부정하면 어떡해!!
“아르르르…끼이잉….”
우유를 배불리 먹은 것인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꼼지락 거리는 강아지.
말랑말랑한 강아지의 발바닥에 손가락을 살포시 대고 비교해 보자, 발바닥이 내 검지 한마디보다 작다.
조그마한 몸에 따스한 온기가 또 다른 의미로 내 가슴을 두근두근 하게 만든다.
-벌컥!
“지영아, 뭐해? 아침밥 안 먹ㄱ…아, 강아지.”
한없이 귀여운 강아지를 손에 안고 막 뺨에 비비적거리려던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언니의 얼굴을 보며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 나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는 언니는 이내 상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헤에? 강아지 데려왔구나~?”
이유 없는 오한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으흐응~ 이게 뭘까나~? 어제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으로 고민을 하시더니,
오늘은 강아지를 들고 오셨네~? “
“뭐, 뭐야…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 지영이, 혹시 강아지가 이상형?”
“…………….”
방안이 냉기로 싸늘하게 식는다.
언니의 말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강아지의 얼굴도 창백해진다.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와 함께, 힘껏 소리지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년아!!”
도대체 무슨 불순한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이 인간은?!
뜨끔해서 한 걸음 물러선 언니가 재미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딱히 진심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농담인데.”
“그런 걸 농담으로 말한다는 거 자체가 글러먹었어!!”
이년아 농담이라도 그런 역겨운 농담은 하지 말라고!! 뭐냐고 그게!!
방금 전까지도 황당한 농담을 하던 주제에 이쪽은 안중에도 없는 듯, 낑낑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내게서 빼앗은 언니가 연신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더불어서 새끼강아지는 여태까지 자기를 안아줬던 주인을 몰라보고 언니의 뺨을 연신 핥는다.
아 튼실이가 옛날에 딱 저랬는데.
어릴 적에 할머니 집에서 데려온 잡종견 튼실이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강아지와 겹쳤다.
………잠깐, 튼실이?
“언니. 그러고 보니까 튼실이 밥 줬어?”
“아, 깜빡했다.”
“어제는?”
“……………………아.”
아는 뭐가 아냐 이년아!!
튼실이 밥 주는 것이 니 일이면서 그걸 안하면 어떡해!!!
어쩐지 어제 저녁 하루 종일 튼실이가 핼쑥해 보이더니….
주인 잘못만나서 고생하는 튼실이였다.
…
아침부터 언니와 대 소동을 일으킨 후, 언니에게서 ‘튼실이의 밥을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학교에 온 나는, 점심시간 막 식사를 끝내고 아이들과 둘러싸여 잡다한 이야기로 튼실이의 일을 모조리 잊어버렸다.
이것저것 잡다한 회화로 이야기를 꽃피우던 중, 얼떨결에 말해버린 우진이에게서 받은 강아지, 아니 정확히는 우진이에게서 받았다는 소리는 안했지만, 본의 아니게 얻어버린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버린 나.
덕분에 수미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아마도 새끼강아지니까, 보고 싶다는 의미겠지.
분명 가져온 것은 내 도시락의 반밖에 안되는데 아직도 그 반을 해치우지 못한 연지가 포크로 싱싱한 방울토마토를 콕 찍으며 말했다.
“그래서, 강아지 이름은 어떻게 지을 거야?”
“으응? 아, 엄마가 벌써 오징어라고 부르던데….”
“으엑, 어때서 해산물인거야?! 게다가 연체동물이잖아!”
‘우엑, 비린내가 이름에서부터 풍겨오는 것 같아….’라며 창백한 표정을 하는 미영이.
지난번에 한번 등장한 이후로 공기취급을 당한 것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연신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럼 다른 식구들은 어떻게 부르는 거야?”
“언니는 에스카르고라고 부르라고 하더라고….”
“프랑스어네?”
“와아-”
무엇이 그리도 신기한 것인지, 유진이가 와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마도 ‘멋진 이름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조금 멋진이ㄹ…이 아니잖아!! 에스카르고라니!! 이제는 괄태충 취급하고 있어!”
(Escargot: 식용 달팽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치는 미영이의 모습에 무언가 뜨끔한 것인지, 딴청을 피우는 유진이.
더불어서 유진이처럼 이름의 뜻을 모르고 있었던 수미는 ‘아 그렇구나!’라며 손뼉을 친다.
유진아, 모르면 그냥 물어보지 그랬니.
“너희 집은 강아지랑 무슨 원수 진거 있니.”
“아니 그건 아닌데…가족들이 전부 네이밍 센스가 최악일 뿐이지.”
분명 말하는 것이지만, 언니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아마 평생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부모를 원망하며 살 것이다. 그만큼 언니의 네이밍 센스는 최악이니까.
더불어서 ‘오징어’라고 이름을 붙여주는 엄마도 만만치 않게 대단하다.
내가 어떻게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지가 더 신기할 뿐이다.
“왜 다른 동물의 이름을 붙인 거야? 최악이다….”
“하아, 그래서 그것 때문에 엄마랑 언니랑 싸우다가 직장에서 일하고 계신 아빠한테 전화까지 했어.”
“별걸 가지고 싸우는구나, 너희 집은.”
수미가 기운이 빠진 듯, 책상에 엎드리며 중얼거리고 유진이와 미영이가 한숨을 포옥 내쉰다. 물론 여전히 도시락을 먹고 있는 연지는 우물우물거리고 있지만 역시 안타깝다는 눈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빠는 엄마 의견이 맘에 든다면서 이름 뒤에 ‘땅콩’을 붙이라던데.”
“…………….”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주의 깊게 쳐다보는 아이들.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여줄 리가 없었다.
더불어서 이미 우리 집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튼튼한 잡종견인 튼실이는 언니가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게다가 새끼강아지를 들고 온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름을 지어줄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이름을 정해줄 건데?”
“아, 음. 글쎄…꼬미라고 부를까.”
“그나마 너는 정상이구나.”
분명 ‘정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기분 탓일 것이다.
“아, 지영아. 그러고 보니까 너 이명환이랑 아는 사이였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하교시간, 막 교실청소를 끝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오려는 중에 유진이가 따라오며 그렇게 질문한다.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하지만, 역시 진지하게 파고들어오는 유진이는 다시 한 번 명환이의 이름을 똑바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는다.
“이명환 말이야. 이. 명. 환. 저번 소풍 때 봤잖아.”
“아, 그 변태인걸로도 모자라서 뻔뻔하고 주변머리라고는 엉덩이에 난 솜털에 뭍은 먼지만큼도 없고 인간말종인 데에다가 생각이라고는 붕어지느러미 끝자락도 따라가지 못하는 잉여 바보 말이야?”
“……………으응, 그렇게 최악이었구나.”
내 솔직담백한 표현을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유진이.
앞서 말한 그대로 이명환은 최악이다.
공부도 안하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주먹밖에 없지, 의리하나만 가지고 죽고 사는 바보다.
그러고 보니 유진이가 왜 걔에 대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왜 걔를 알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걸까?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났어.”
“에?”
나는 자세한 것은 묻지 말아줘! 라는 표정으로 유진이를 피해 달아났다.
물론 유진이에게 들러붙는 철호가 그녀의 분노가 담긴 메가톤 펀치를 맞아주는 덕분에 더욱 수월해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서둘러서 집에 돌아와 영양제를 삼키고, 냉장고에서 꺼낸 푸딩을 양화와 나눠먹으며 TV를 보던 나는, 문뜩 내 새끼강아지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화야, 꼬미 어디갔어?”
「꼬미? 아, 강아지? 몰라, 나는 여태 누나 주머니 속에서 자고 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양화는 언제나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리가 없는 것이다.
방안에 놓아둔 상자 안에도 없고,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없고, 집 문을 지키고 있는 잡종견인 튼실이를 쫒아내고 찾아본 튼실이의 개집 안에도 없다.
집 밖으로 쫓겨나, 목줄이 닿는 거리의 최대 거리에서 불쌍하게 쪼그리고 앉아 내 눈치를 보는 튼실이. 나는 그런 튼실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튼실이의 집안으로 상체를 집어넣고 구석구석을 뒤져본 후, 허탈한 마음으로 튼실이의 집에서 몸을 빼냈다.
그러고 보니 언니 이년, 또 튼실이 밥 안줬구나!!
뱃가죽이 등에 붙은 듯 빼빼 말라버린 튼실이의 모습을 보며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 밥과 각종 남은 야채반찬으로 만든 개밥을 들고 나와야 했다.
「저기, 누나.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누나 튼실이가 그렇게 싫어?」
“응? 왜?”
밥 냄새를 맡고 벌떡 일어나 침을 질질 흘리는 튼실이의 앞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대답을 하자, 양화는 어쩐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으응, 왜일까-어쩐지 누나는 튼실이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주머니에서 안쓰럽다는 듯이 튼실이를 쳐다보는 양화.
순식간에 밥을 다 해치우고도 여전히 배가 고픈 것인지 애교를 부리며 낑낑거리는 잡종견 튼실이는, 그 거대한 몸집으로 애교를 부리는 게 역겨워 기분이 나빠진 내 ‘닥치고 앉아’라는 명령에 꼬리를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내가 튼실이를 싫어한다고? 글쎄…분명 난 튼실이를 좋아한다.
싫어할 리가 없잖아. 얼마나 착한 잡종견인데.
“아니야, 귀엽고 튼튼한 잡종견인 튼실이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면 어째서 늘 ‘잡종견’을 강조하는거야….」
잡종견을 잡종견이라고 하지 포메리안이나 웰시코기라고 부를까?
더불어서 이제 와서 표현하는 거라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튼실이의 검은색 털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전에 피규어인 상태로 찾아왔을 때 날 물어 죽이려고 했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얼마나 착한 잡종견인데….
「거봐, 싫어하는 거 맞잖아.」
왠지 내 설명을 듣고 확신해버리는 양화였다.
…
이미 꼬미라고 이름을 지은 내 쪽과는 달리 아직도 새끼고양이의 이름을 정하지 못한 우진이의 집.
이름을 짓는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홀로 TV를 보며 놀고 있는 소미와, 어느새 이쪽으로 찾아와서 새끼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양화와, 우진이의 가슴포켓 주머니에 매달려있는 음화, 그리고 나와 우진이가 새끼고양이를 중심으로 거실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있었다.
“와아-! 이 깽이 수깽이였어 우진아?”
『으응, 한편으로는 나은 거려나, 수코양이라면 키울 때 딱히 중성화 수술시킬 필요도 없고….』
음, 그러고 보니 예전 중학교의 선배언니에게서 들었던 사실인데, 사실 수코양이들은 발정기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암컷의 발정기에 따라 반응하는 형태란다.
강아지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그런 이유로 고양이 암컷을 집에서 키울 때는 중성화를 시키는 편이 주인에게나 고양이에게나 매우 이득인데, 한번 발정기가 시작되면 며칠에 한 번씩 시작되는 발정을 가장한 발작 때문에 암코양이나 주인 둘 다 매우 피곤해진단다.
물론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게 어떤 고통인지 잘 모르겠다만….
『그럼, 고양이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오이!! 음화가 지을꺼야!!”
『응? 무슨 이름인데?』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지나가며, 음화가 소리치는 순간 동시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꼬ㅁ!!”
“꼬미는 안 돼!!”
아무것도 모르는 음화가 손을 빨딱 들고 소리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물론 그 후 내 쪽으로 모이는 시선에 당황했지만, 내 손을 잡는 양화덕분에 진정을 하고 말한다.
“꼬미 말고 다른거! 다른 이름은?”
“에-?! 꼬미가 좋은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뺨을 빵빵하게 불리며 나를 노려보는 음화의 모습에 한숨을 쉬어야 했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꼬미인데 고양이까지 꼬미가 되면 어떡하냐고!!
『으음, 내 생각에도 꼬미, 괜찮은데….』
“그치그치?”
“아냐! 절대 아냐! 음…그, 그래!! 뿌미는 어때? 뿌미!!”
“저기 누나… 쌍 기억을 쌍 비읍으로 바꾼 것뿐이잖아.”
이익 얘는 왜 쓸데없는데서 태클이야?!
“어쨌든 뿌미로 하자! 뿌미!! 귀엽잖아!!”
『근데 어째서 ‘미’에 집착하는 거야? 꼬미, 뿌미…………소미?』
“왜 거기서 소미가 나와 이 바보야!!”
『응? 언냐 나 불렀어?』
자기 이름이 거명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미.
우진이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소미와 내 시선을 회피한다.
뭐, 어쨌든 내 처절한 앙탈과 고집으로 인해 새끼고양이는 꼬미가 되는 것을 면하고 뿌미가 되었다.
어쩐지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요상한 느낌이 들지만….
그 후로 알게 된 건데, 뿌미가 수컷이었다는 사실을 들은 뒤로 며칠 후, 나는 언니에게서부터 꼬미가 암컷이라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꼬미가 없어진 그날, 언니가 남몰래 꼬미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 건강을 검사하고, 만약 수컷이었으면 꼬추를 잘라버릴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섬뜩한 한마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었지만, 암컷이라서 중성화 수술을 안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조그마한 강아지에게 내가 겪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후우, 그보다 우진이가 이미 한번 한 검사를 또 하다니…
뭐, 언니가 그 사실을 알겠냐만.
더불어서 언니가 조금 더 사온 강아지 우유로 한동안 꼬미가 배를 곪을 일이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만족했다.
게다가 이 건강한 강아지는 활발하기도 굉장히 활발해서, 처음 왔을 때의 그 긴장은 단 사흘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집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수준이 되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꺙! 꺙꺙!”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따라오는 꼬미.
그러고 보니까 집 앞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튼실이가 꼬미를 보면 큰일 나지 않을까?
“…뭐, 별 일 없겠지.”
「안전 불감증이야 누나.」
여전히 쓸데없는 곳에서 태클을 걸어오는 양화.
때리기 귀찮으니까 주머니에 후추 가루를 뿌리는 것으로 봐줬다.
“왕!! 뀨응~ 왕! 꺙!”
가늘고 짧지만 그 작은 것이 매력인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재롱을 부리는 꼬미, 나는 초롱초롱한 꼬미의 눈을 보며, 우진이에게서 꼬미를 받아왔던 그날의 그 상황이 떠올라 급속히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갑작스럽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바로 그거야!!”
인연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만날 이유가 없고 모르는 사이라면, 만날 이유를 만들면 되는 거고, 모르는 사이라면 아는 사이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끄응, 대체 내가 왜 그런 창피한 짓을 해야만 하는 거지….
겨우 그런 바보를 만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바보 같고 부끄러울 뿐이다.
「콜록! 콜록!! 켁, 뭐, 뭐야 누나?」
조금 전에 잔뜩 뿌려놓은 후추의 매운 향기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양화.
덕분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민망한 마음에 애써 양화를 외면하며 얼버무렸다.
“아, 안 가르쳐줄 거야!”
「으에 치사해….」
결국 후추폭탄에 울음을 터트는 양화를 애써 무시했다.
# by | 2009/07/28 12:43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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