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19일
티아☆푸딩케잌 하우스! #21
# 21
“에? 뭐야? 우리 집 전화번호?”
「응, 우진이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아침부터 거울을 보고 칫솔질을 하고 있는 나에게, 세면대 위에서 앉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양화.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뒤숭숭한 기분과 함께 하루 종일 학교에서 양화의 말을 되뇌어야 했다.
‘응, 우진이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응, 우진이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응, 우진이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응, 우진이 형이 알려달라고 했어.’
“지영아? 지영아, 내 말 듣고 있어?”
“내버려 둬, 다혜야. 지영이 오늘 하루 종일 저러고 있어.”
옆자리에서는 다혜와 미영이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부분부분 내 상태를 체크하듯 나를 부르며 말을 걸어오지만, 머릿속에서는 오직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어’라는 말만이 메아리가 치듯 울려 퍼진다.
도대체 왜? 왜 내 전화번호가 필요 한 거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건 학교에서 하면 되잖아?
…설마, 설마 그건 아니겠지만,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헌팅인가?
순간 두근두근 하며 얼굴로 혈류가 몰려드는 것 같아, 누가 볼세라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누나, 왜 그래? 나 배고파. 도시락 먹자.」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 시각, 정말로 배가 많이 고픈 것인지, 슬금슬금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책상 위로 올라와서는, 내 소매를 당기며 애원하는 양화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차리자. 이런 쓸데없는 일 가지고 이렇게 멍하게 있을 수는 없다.
“응, 그래. 밥 먹자.”
「응! 오늘 푸딩은 뭐야?」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양화의 얼굴을 보자, 귀여워서 뺨을 쓰다듬어줬다.
도대체 나는 부탁만 하면 ‘대부분’은 들어주는 이렇게 착한 양화를 왜 괴롭히고 미워한 걸까? 저번에 뺨을 잡아당겼을 때 많이 아팠겠지?
나는 도시락가방을 열고 양화가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 푸딩을 꺼내려 했ㄷ….
“아, 푸딩 안 가져왔다.”
「…….」
…의도하지 않게 양화를 울려버렸다.
매점에서 싸구려 과일 푸딩과 부드러운 빵 종류의 과자를 사서 가방에 넣고 양화를 달래줬지만, 그래도 뾰로통한 얼굴에 빨간 눈시울을 한 채, 가방 속에서 조용히 푸딩과 요구르트, 그리고 카스텔라 빵을 먹고 있는 양화.
미안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햇살이 잘 비치는 교실 화원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쬘 뿐이다.
-덥썩!
“…에?”
익숙한 화장품 냄새와 함께,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
목을 감아오는 그 느낌에 고개를 돌리려하자, 처음 여자가 되었을 때 이후로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영아, 여기서 뭐하니~?”
“…언니?”
캐주얼한 차림으로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 그리고 얇은 진 소제 재킷을 입은 언니였다.
이 시각 고등학교에 이런 차림으로 찾아올 수 있는 거였나?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양화가 있는 가방 반대편의 내 옆자리에 앉아 내가 열어놓은 도시락을 보며 방실방실 웃는다.
“헤에? 꽤 하잖아? 남자였을 때는 귀찮다고 라면만 줄 창 끓였으면서….”
“저기 언니, 누가 들으면 내가 요리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생각할거 같은데…그 발언.”
‘아니었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 인간.
저기…귀하가 매일 먹는 반찬의 70%는 누가 준비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언니가 집에서 매일 먹는 반찬, 그거 누가 만들었게?”
“아, 그거 마트에서 사 온줄 알았지.”
얄밉게도 내 도시락에서 계란말이를 빼앗아 입에 쏙 집어넣는 언니의 면상에 주먹을 날릴 뻔 한 것을 애써 참았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먹을 것을 잘 만드는 사람은 ‘나’하나 밖에 없었다.
엄마도 만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 년에 서너 번, 김치를 담그거나 밥을 만들 때를 제외하면 ‘반찬’이라는 것을 만들기가 귀찮아 천장에 굴비를 걸어놓고 그거 보고 밥을 먹으라고 할 사람이다.
언니가 만드는 반찬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 아버ㅈ, 아니 아빠는 집에 있는 날이 없었으니 또 제외다.
결국 집안에서 반찬을 만드는 사람은 나였고, 밥을 만드는 사람은 엄마였으며,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언니였다.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귀찮다고 나에게 떠넘기는 일이 허다했지만.
“음음! 지영아, 너 나날이 요리 실력이 늘고 있는 것 같아!”
“저기, 그러니까 내 밥 뺏어먹지 말고 집에 가서 밥 먹어 언니….”
“뺏어 먹는 밥이 더 맛있어.”
당연하다는 듯이 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 도시락을 빼앗아 먹는 언니.
잠시 멍하게 있는 사이에 도시락의 절반이상이 사라진 것을 보고 우울해진 나는 이미 빼앗긴 젓가락을 내버려 두고 숟가락으로 차가워진 밥과 계란말이 찌꺼기를 퍼먹는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또 심영아저씨를 만나러 가게 될 것 같아서 말이다.
“근데 언니, 도대체 무슨 일로 학교까지 찾아온 거야?”
“아냐, 오늘 학교가 노는 날이라서 말이지…할 일 없으니까.”
할 일이 없어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병약여동생의 점심밥을 뺏어먹으러 오셨나요? 이년아.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 너, 니 친구들이 말하길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하다던데….”
텅텅 빈 도시락을 보고 젓가락을 쪽쪽 빨며 ‘더 먹고 싶어요.’, ‘이 언니는 아직도 배가 고프답니다.’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언니는 마침 내가 가장 이야기하기 곤란한 주제를 파고들어왔다.
“아, 음. 뭐…사실대로 말하자면 뭐 그래….”
“무슨 일이야?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기 곤란한 거야?”
“으응, 조금….”
확실히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조금 곤란한 종류의 이야기다.
부끄럽기도 하고, 만약에라도 내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상당히 곤란한 종류의 물건이니까 말이다.
“저기…언니”
“응?”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누가 언니한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그건 무슨 의미야?”
“엑?”
순간 경악과 함께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던 언니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실눈을 뜬 채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헤헤헤…지영아, 너 혹시 헌팅이라도 당한거니?”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순간 얼굴로 뜨거운 열기가 몰리는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더불어서 서비스인 건지 가슴도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한 게 아닌데…!!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애’의 친구가 나한테 ‘그 어떤애’가 나한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음, 뭐 그럼 헌팅은 아니네.”
뭐야, 왜 아쉬워하는 건데?! 왜 한숨을 푹 쉬는 건데?!
언니,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재미없어 하지 마! 한심해 하지 마! 나는 진지하다고!!
“걔랑 너랑 아는 사이야?”
“으응.”
“헤에~?”
언니의 여우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나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물통을 열고 물을 따라 마셨지만,
어째서인지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너 혹시 걔 좋아하는 거니?”
“……….”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
“우진아 우진아~ 뭐해애~?”
『아, 잠깐 나갈 준비를 하려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쪽’으로 넘어온 나는, 평소와는 달리 이것저것 움직이느라 분주한 우진이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양화’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우진이에게 보낸 뒤, ‘말해줬어!’라는 말 만 하는 양화를 믿지 못하고 내가 직접 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아오는게 조금 늦은 것인지, 반응을 보이는 우진이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굉장히 바쁜 우진이의 모습만이 보인다.
더불어서 지난번에 동물병원에서 ‘아주 건강하다’라는 진단을 받은 새끼고양이와 강아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거실에 내려놓은 그 조그마한 박스 속에서 자고 있겠지.
전화번호를 알려주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진이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란 것을 느꼈다.
『오빠 어디가?』
TV를 보고 있던 소미가 쪼르르 뛰어나와, 자신의 방에서 나오고 있는 우진이를 보고 말을 걸어온다.
『으응, 소미야. 티아랑 음화랑 같이 잠깐 집에 있지 않을래? 오, 오빠 어디 좀 다녀와야 해서.』
소미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인지, 웃기만 하며 대충 얼버무리는 우진이. 하지만 나는 우진이가 책상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보고, 그리고 그의 행동으로 보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우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거짓말을 하거나 당황할 때면 늘 말을 더듬는 바보의 모습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는가.
나는 서둘러서 현관의 신발장에 기어 올라가,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우진이의 주머니로 뛰어들었다.
새하얀 티셔츠에 푸른색과 연한 하늘색이 잘 어우러진, 게다가 커다란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이 얇은 재킷을 입은 우진이이기에 숨어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더불어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있는 우진이는 그 박스를 신경 쓰느라 내가 자신의 주머니에 숨어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깐 나갔다 올게 소미야.』
『응! 잘 다녀와 오빠!!』
“빠이빠이 우진앙~!!”
소미와 함께, 소미의 어께에서 손을 흔드는 음화의 모습.
하지만 그 둘은 내가 우진이의 잠바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머리카락색이 우진이의 재킷 색과 비슷해서겠지.
파란색 머리카락이 이런 때는 유용한 건가?
공중전화로 향하는 우진이.
그리고 그의 손에는 내 집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종이가 쥐어져 있다.
상자를 내려놓은 우진이가 버튼을 누르려는 그 순간, 나는 가까스로 눈을 감고 ‘원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에? 누나 벌써 돌아온 거야?」
“으, 응!! 자, 잠깐 기다려!!”
서둘러서 의자를 끌고 거실로 나와 그 앞에 다소곶이 앉아, 전화를 기다린다.
……………….
……………….
……………….
…으응? 자, 잠깐. 이, 이럴 필요는 없잖아?
나, 나는 왜 이러고 앉아있는 거지?
「누나, 왜 그래?」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양화의 모습을 보자,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띠리리리리리~!!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벨소리.
올 것 이 왔다!
-띠리리리리리~!!
숨을 크게 들이쉬고 서둘러서 수화기를 들려는 그 순간, 덜컥 겁이 난다.
잠깐, 이렇게 빠르게 전화를 받으면 꼭 기다렸다는 듯이 받는 것처럼 보일 것 아냐?
조, 조금 기다려야 하나?
-띠리리리리리~!!
-두근두근두근두근…!!
아, 지금 받지 않으면 집에 없는 줄 알고 안 받을지도 모르는데…!!
「누나 전화 안 받고 뭐해?」
“바, 받을 꺼야!!!”
서둘러서 전화를 받자, 조금 긴장한 듯 한 우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거, 거기 지영이네 집인가요?》
이 바보가, 지영이네가 뭐야, 지영이네가?
…라고는 말했지만 막상 대답을 하려고 하니까 이쪽도 긴장이 돼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으, 응? 아, 아, 안녕? 아하하, 나, 나야. 지영이.”
《아, 지영이구나? 미, 미안해 갑자기 연락해서.》
“아, 아냐. 괜찮아. 무슨일이야?”
《저기…………….》
한동안 뜸을 들이는 우진이.
그리고 그의 망설임이 지속될수록 긴장한 내 가슴은 점점 더 두근거려와, 머릿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누나 얼굴 빨개.」
“시, 시끄러, 전화 따위 가지고 이런….”
《여, 여보세요?》
“아, 아냐! 아무것도!! 아하하하….”
《아, 그, 그래? 그, 그럼 저기…부탁이 있는데…》
그리고 나는, ‘…에서 만나주지 않을래?’라는 질문에,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해버렸다.
………………………………………………………………………………………………………………………………………………………………………………………………………………………………………………………………………………………………………………………………………………응?
이 바보! 이 바보!! 대체 왜 ‘응’이라고 대답한 거야?! 으아악!!
스스로 자책을 해도 소용이 없는 짓.
《고, 고마워! 그럼 거기서 보자!》
“으, 응! 알았어.”
수화기를 내려놓고 절규한다.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방도를 생각해도 내가 한 대답을 물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
‘양화’가 대신 내가 되어서 우진이를 만나게 한다.
「으에, 누나 진심이야?」
“다, 다, 다, 다, 당연하지!! 바보야!! 내가 어떻게 만나!! 니가 나가!”
그렇다고 직접 나가자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나가면 좀….」
“시끄러!! 하라면 해!!”
서둘러서 화장을 끝마치고 침대 위에 눕는다.
분명 정신을 차리면 우진이의 주머니 속이겠지.
「누나는 정말…하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나는 것보다는 양화에게 맡기는 쪽이 더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
『조금 늦네….』
아직 5월 중순인 만큼, 빠르게 지는 해는 어느새 우진이가 전화를 했던 그때와는 달리 어두컴컴해져서, 가로등이 아니면 새까만 주위가 보이지 않을 수준이 되었다.
주머니에서 머리를 내밀자,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부터 멀지 않은, 학교 근처의 버스 정거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우진이와, 아직도 그의 발밑에 있는 상자가 눈에 보인다.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양화’가 조종하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간단한 봄옷을 입고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내가 보인다.
으악! 저 바보! 화장도 안하고 그게 뭐야?!
『우진아-!! 미안해! 조금 늦었지~?』
포니테일로 길게 묶어버린 머리카락과 새하얀 원피스 위에 봄가디건을 입고 있는 나는 꾸벅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주머니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힐끔 쳐다본다.
양화! 파이팅!!
『응, 그래서 부탁이란 게 뭐야?』
『으응, 저, 저기….』
괜히 뜸을 들이는 우진이, 덕분에 나는 잔뜩 기대가 돼서 두근두근 한다.
말을 해! 말을 하라고!! 뭘 말하고 싶은거야??
『아, 그러니까…뭐라고 해야 할까….』
뺨을 긁적이며 말을 잇지 못하던 우진이는, 자신의 발아래 놓여있는 박스를 집어 들었다.
분명 내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들어있을 그 상자, 그리고 그 안에는….
……………아.
『냐앙-!!』
『끼잉-! 뀨응-!!』
두터운 담요들로 둘러싸인 채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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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거 필요 없어!!!!
# by | 2009/07/19 15:20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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