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푸딩케잌 하우스! #13

 # 13


“…………….”

“……쿠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은색의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내 새파란 머리카락과 뒤섞인 채, 누굴 인형 대하듯 끌어안고 자고 있는 음화. 실눈을 하고 노려보았지만, 잠든 애가 깬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까.


물론 정말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지만.


“…말로 할 때…일어나라.”

“………………………에헤에~ 깼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음화의 귀를 잡고 질질 끌고 가, 방안의 테이블 앞에 앉히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 음화를 노려본다.


“도대체 너, 뭐야.”

“에? 뭐가? 무슨 의미야 언니?”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황금 빛 눈동자를 깜빡인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기분을 느끼는 이쪽과는 달리 너무 생생해서 반짝거리는 음화의 모습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도 ‘나’ 지?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흐응~ 나는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딴 짓을 하며 내 시선을 피하는 음화.

그리고 이내 그 행동을 그만두고 나를 마주보며 미소 짓는다.


“……………….”

“……………….”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간 것일까.

얼마나 긴 침묵이,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지나간 것일까.


“난 소미가 좋으니까.”

“…엑?”

“난 우진이가 좋으니까.”


………어, 어라? 자, 잠깐만, 나 지금 고백을 들은 거야?

그걸 왜 지금 하는 거야?! 나 지금 순정만화 보고 있는거 냐고?!

갑작스럽게 음화의 고백을 받는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입을 닫지 못했다.


“난 언니가 우진이랑 소미에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난 ‘언니’니까, 나 외에 ‘다른 누군가’가 우진이랑 소미와 노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어. 난 ‘언니’니까. 안 그래? 언. 니-!”


총알처럼 할 말을 다 하고는 벌떡 일어나 인형의 집 밖으로 나가는 음화.

나는 그런 음화를 잡지도, 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나는 멍하니 서서 음화가 말하는 것을 떠올렸다.


‘난 언니가 우진이랑 소미에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난 ‘언니’니까, 나 외에 ‘다른 누군가’가 우진이랑 소미와 노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어. 난 ‘언니’니까.‘


“……………….”


이해할 수 없어. 이해 할 수 없다고.


다음날 아침,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빠졌다.

아파도 이를 악물고 학교를 가던 나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한 순간의 변덕이다.

언니와 엄마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그대로 쪼그려 앉는다.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누나, 누나답지 않아….」

“별 생각 없어,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뿐….”


무릎을 끌어안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집에서 잠이 들자마자 넘어온 ‘이쪽’,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이었다.


“…아.”


평소에 이 시간대에 깨어나면 분명 우진이의 주머니나 가방 속에 있어야 할 내가 인형의 집에 남아있다.


인형의 집 문 앞에는 내가 잠을 자기 때문에 절대 먹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날 위해 준비해놓은 것이 분명한 푸딩이 플라스틱 랩에 덮인 채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


싫어, 이런 거 싫다고.

왜 남아있는 게 내가 되는 건데….




《뚜우- 뚜우- 뚜우-》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에 매달리고 있던 나는,

그리운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역시 바쁜 그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그렇게도 무거운 것일까.


나는 내가 여자아이가 된 이후로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에게 못된 원망을 품었다.


《안녕하세요, 김지혜의 핸드폰입니다. 지금 저는 바쁜 일이 있는 와중이라 전화르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가 나면 음성 메일을 남져 주시거나….》

- 달칵.


언니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분명 한창 개인적인 일로 바쁠 것이 분명한 언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핸드폰이 없다.


「누나, 집에 돌아가자. ‘저쪽’으로 가보면. 소미나 음화가 있잖아.」

“싫어, 그리고 내가 가면 넌 어쩔 건데….”

「데, 데헷? 그것도 그렇네.」


평범한 주말, 일주일에 한번 찾아오는 토요일의 이른 오후는 나를 심심하게 만들기에 딱 좋았고.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자청한 상황이다.

평소에 돈을 쓸 일이 없었던 만큼, 주머니 사정도 의외로 넉넉하고-, 길거리에서 주은 오백 원으로 공중전화를 사용해 다른 아이들과 연락을 넣어보지만, 그것도 오늘따라 잘 되지 않는 상태였다.


《에에-!! 미안해! 나 오늘 우리 호랑이 삼촌 집에서 알바 해야 해서 바빠-!!》

“아, 괜찮아 수미야. 삼촌한테 물려도 일할 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거 알지?”


《지영아, 너 일부러 삼촌보다 호랑이 쪽에 포커스를 둔 거지!?》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얼른 수화기를 놓는 바람에 잘 들리지 않았다.


《흑흑, 지영아, 나도 놀고 싶은데, 어제부터 선생님이랑 선배들이 단체로 수련 가셔서, 도장 후배들 가르치는 일을 맡아버렸어.》

“힘들겠네, 유진아. 대충대충 가르쳐. 후배란 동물은 키워봤자 말짱 도로묵이야.”


《미안, 나 오늘 어린 동생 돌봐야 해서 집에서 못나가….》

“연두야….”


《지영아….》

“아니 괜찮아 미영아, 너도 말 안 해도 알거 같아.”


《아니 그럼 왜 전화를 한 거야?!》라든지 《이게 내 첫대사인데에에에---!!》라는 미영이의 절규소리가 들린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수미 때처럼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는 바람에 듣지 못했다. 어쨌든 절친한 애들은 전부 바쁜 듯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반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이름만 알고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달칵! 뚜르르르르》


왜 전화를 건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아무생각 없이 바보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했다.


《오? 지영아!!》

“강냉이 털리고 싶으시면 동목 중학교 앞으로 5분 내로 쳐나오세요☆.”


상쾌하게 한마디를 하고, 공중전화 옆 구멍가게에서 사탕 하나와 차가운 음료수를 사들고, 사탕을 입에 문 채 맞은편의 중학교 교문을 쳐다본다.


“3…2…1 왔네.”


5분이라고 말했지만 2분이 지난 뒤부터 60초부터 1초까지 숫자를 세어 보자,

역시 3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철호.


헥헥 거리면서도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방실거리는 바보의 얼굴에 차가운 음료를 집어던졌다.


“그런데 우리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유진이.”

“오우, 일부러 유진이에게 이 오빠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단 말이지?”


미리 준비해둔 변명거리로 대충 둘러대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얼마 안가 들러붙는 바보의 두터워지는 입술이 내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안면에 주먹을 날려줬다.

아무래도 이 자식은 첫 데이트다 뭐다 하면서 아주 신이 나 있는 듯싶었다.


“어디 놀러가자.”

“그래, 우리 한적한 공원이나 갈까?”


수도로 철호의 뒤통수를 갈기며 조용히 윽박질렀다.


“…철호군~ 적당히 안하면 어께 위에 있는 그 장식 영원히 잃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옙!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새로 나온 봄옷을 구경하며, 세일을 하는 곳에 철호를 시켜 비집고 들어가 싼 옷을 사들고 나와 뿌듯함을 느끼고, 이내 백화점을 나온 뒤에도 근처의 옷가게에 들어가 또 다른 옷을 구경한다.


“저기, 저기, 이 원피스 어떻게 생각해?”

“노출이 적고, 크고 펑퍼짐한데다가 제 타입이 아니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라 이 자식아.


지가 맘에 들지 않는 점은 일일이 다 말해놓고 뒤에 가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요러는 꼴이 맘에 들지 않아 간만에 복부에 니킥을 먹여줬다.


“엑?! 벌써 다섯 시야??”


옷을 서너 벌 사들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겨우 다섯 백을 들고 헉헉거리는 철호가 창백한 얼굴로 대답한다.


“저도 가봐야 하지 말입니다….”


간만에 사람이랑 사람과 섞여서 놀아본지라 아쉬움이 묻어나는 가운데, 나는 철호의 셔츠자락을 잡고 근처의 분식점으로 들어가 철호에게 떡볶이와 라면 한 그릇을 사줬다. 덕분에 투덜투덜하던 철호가 화색을 되찾으며 게 눈 감추듯 먹을 것을 먹는 것이다.


천천히 먹어라 아무도 안 뺏어먹어.


“그런데 지영아, 너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응? 무슨 소리야?”


입 주위에 떡볶이 국물을 잔뜩 묻히고 갑작스럽게 질문을 하는 철호, 고개를 갸우뚱 하는 모습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다시 라면 그릇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니, 아냐. 아무것도.”


뭐야 그 뜨듯 미지근하고 싱거운 대답은….


철호를 배불리 먹여서 칭얼거림을 방지한 나는, 양손에 가득 봄옷들을 든 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집안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언니조차 집에 돌아와 있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가슴속에 찾아오는 뻥 뚫림과 우울함은 배가 되었다.


「누나, 쓸쓸한 거야?」

“………….”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발 밑에서 나를 마주보고 있는 양화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영아, 그거 알아? 조금 있으면 봄방학인데, 이웃마을에 벚꽃축제 가지 않을래?”

“아… 좋아!”


지난 주, 유진이의 제의에 응! 하고 흔쾌하게 대답했던 나는,

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창밖을 쳐다봐야 했다.

이건 분명히 하늘 저 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분명한 증거다.

저 자식 분명히 나랑 원수가 진 게 분명해.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지영이니? 미안해, 기상청 말로는 오늘 맑다고 했었는데….》


금방 전화를 해서 미안해하는 유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까지 꺼 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런 거 가지고 미안해하고 그러니.


“괜찮아.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게 딱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엄마가 말하는 친구 아들이고, 하나는 손만 잡고 잔다는 애인이고, 나머지 하나가 다름 아닌 기상청이잖아.”

《그러게, 정말 틀린 말 하나도 없네.》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고, 부모님은 아직 직장에 계실 시간.

라디오를 틀어보니, 정치인이 말 바꾸듯 얼굴을 싹 바꾸고 오늘의 강우량을 이야기하는 기상청이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거란다.


「오늘은 하루 종일 심심하겠네.」


블라우스의 가슴주머니에서 상체만 내밀고 있는 양화가 지루하다는 듯, 그 조그마한 입으로 하품을 하자, 나는 그 모습에 따라서 하품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몸이 굳어버렸다.


-두근!


아-. 하는 순간 집 앞의 정문을 지나가는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색의 커다란 우산, 그리고 싸구려 색의 두터운 자켓,

그리고 그의 어께에 앉아있는 은색의 인형.


「정우진이다.」


양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밖을 내다보자, 익숙한 그림자와 함께 골목 구석으로 사라지는 한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누, 누나!! 나가지 마! 비 맞으면 감기 걸려!!」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냉정한 빗물을 해쳐지나가며 그림자가 사라진 골목을 향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림자는 빗물에 녹아 어디론가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누나, 감기 걸려. 돌아가자.」


차가운 빗물이 몸을 적시는 가운데, 물먹은 솜 마냥 무거워진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물을 잘 먹는 스웨터를 입고 있던 나는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몸을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어서 옷 갈아입어, 안 그러면 진짜 감기 걸려!!」

“시어머니마냥 쫑알쫑알 거리지 마! 자꾸 그러면 너부터 홀랑 벗겨버린다.”


훌렁훌렁 옷을 벗고 미리 뜨거운 물을 틀어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자, 열기와 함께 편안함이 느껴진다. 온몸을 감싸오는 따스한 온기가 불안함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누나, 목욕하고 나서 푸딩 먹자.」

“으응, 그 전에 한숨 잤으면 좋겠다.”


옷을 벗을 때부터 옆에서 같이 옷을 벗고 있던 양화가 내 머리위에서 두 다리를 교차로 흔들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살금살금 어께로 내려와, 뜨거운 물에 푹 젖은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며 흥얼흥얼 노래를 한다.


피로한 나에게 그 노랫소리는 자장가와도 같았다.

얼마나 긴 시간동안 눈을 감고 있었는지, 깜빡 잠이 들었었는지 애매모호한 그 시간 속에서 양화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누나, 음화 너무 미워하지 마.」

“미워하는 거 아냐… 미워하는 건 아닌데….”

「그럼 언니는 음화 좋아하는 거네☆!」


…………엑?

순간 들려오는 환청에 가까운 목소리에 당황해서 눈을 뜨자, 언제,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은색의 머리카락과 금색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금색의 머리에 은색의 눈동자를 한 소년과 그 옆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은발 금안의 소녀.

…둘은 내 가슴 위에서 각자 한쪽 가슴에 매달려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음화 여기는 왜 왔어?」

「내 맘이다 바보 양화-! 메롱!」


파닥파닥 하고 욕조의 물을 튀기며 나에게서 떨어져 욕조의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음화. 그리고 그런 음화에게 간단하게 도발당해서 쫒아가는 양화.


「이익!! 거기서!!」

「캬하하! 나 잡아봐라!!」


간만의 목욕이 한 마리 더 늘어난 피규어 덕분에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캬아-!! 눈에 물들어 갔어!! 흐에에엥--!!」

「우는 척 하지 마 거짓말쟁이 음화!!」

「언니, 언니이!! 양화가 나 때렸어!! 후에에엥--!!」

「누나, 음화 말 믿지 마!! 누나도 봤잖아!!」


“……………이것들이.”


나는 두 피규어를 붙잡고 변기에 던진 뒤, 공평하게 물을 내렸다.


by Sourjelly | 2009/07/08 13:10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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