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3일
티아☆푸딩케잌 하우스! #9
#9
“저기…괜찮다면, 자.”
“아, 고, 고, 고맙….”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혀가 꼬여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얼떨결에 우진이 내밀어준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마구 뒤엉켜버린 것이다.
대체 어째서 저자식이 나랑 같은 학교에 있는 거야?!
아,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까 남학생들 교복이 어쩐지 눈에 익다 했어!!
평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자식이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였던 거야!!
순간적인 패닉에서 벗어나 우진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어버버’ 하는 사이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이 자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서 복도를 쭉 걸어가는 중, 익숙해 보이는 목소리와 얼굴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었다.
“유진아-!! 나 너랑 같은 반이야!!”
“캬아! 진희야!! 아 진짜 운 좋다!!”
“야, 철호야? 여기 학교 물 한번 끝내준다?”
“진수 이 새끼, 너도 이 학교로 온 거냐….”
식은땀이 흐르며,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을 정도로 긴장됐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놈들만 벌써 다섯은 본 것 같다.
왜 다들 이 학교로 입학하고 난리야? 이것들은!!
“저기, 어서 너, 네 반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에? 아, 예, 예!”
언제 종이 친 것인지 몰라도, 사실상 내 반인 E반의 문 앞에 서있던 나는, 종소리와 함께 옆에서 서있던 다른 아이의 말에 서둘러 교실로 들어왔다.
“뭐….”
더불어 교실 한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정우진’의 모습에 경악한다.
황당해서 할 말을 잃은 가운데, 내 첫 고등학교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라고 말이야, 누나, 정말 나 괜찮을까?”
“‘언니’라고 불러. 그리고 푸훗!”
입학식에서 나를 짓누르는 무게와 불안함을 누나에게 털어놓자마자, 누나의 얼굴은 진지하게 들어주려고 하던 표정에서 평소의 재수 없는 누나의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 정말, 조금은 위험한 걸지도.’라고 중얼거리는 누나는, 이내 손거울을 들고 내 앞으로 가져와 그것을 보여준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학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나의 처참한 얼굴이 거울에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자, 얼굴을 봐. 어떤 생각이 들어?”
“머리가 긴 징그러운 남자새끼 하나.”
“흐응, 그래?”
‘난 네 얼굴이 그다지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등등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하지만 의미를 알아들으면 왠지 내가 질 것 같은 말을 하는 누나는, 방안으로 돌아가서, 내 중학교 졸업앨범과 자신의 옛날 얼굴사진을 가져오며 나에게 보여줬다.
“자, 이거. 분명 작년 여름에 찍은 네 얼굴일거야.”
“아, 그거. 그게 뭐?”
“여기 내 중학교 3학년 얼굴사진이랑 비교해볼까?”
졸지에 누나의 중3 사진과 나란히 세워진 내 사진은 머리카락의 길이와 속눈썹, 그리고 눈썹 의 두께와 길이 등을 제외하면 얼굴형에서 별반 차이가 없…응?
“엑? 자, 잠깐. 이거 진짜 누나 중3때 얼굴이야?”
“그럴 줄 알았어. 평생 거울한번 안보는 남자들 같이 살아왔으니까, 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몰랐을 거 아냐.”
순간 나는 가끔 철호가 장난삼아 ‘니 축제 때 여장가수 나가라’라거나, 평소에 내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길면 ‘니 여자 같다’라는 식으로 내 성질을 건드리는 장난을 걸어 왓 던 사실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그 말 진심이었던 거냐?! 신철호!!
하지만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철호를 제외하고는 내 얼굴형에 그 닥 관심을 가지는 녀석이 없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게 따지면 신철호, 이 자식은 게이가 분명하다.
“내 방으로 가자, 그 엉망진창인 머리부터 정리해야 할 거 아냐.”
방글방글 웃으며 빗으로 머리를 빗어주는 시늉을 하는 누나.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우 불안한 감정에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 ………………그 다음엔 뭘 할 건데?”
“화장 배워야지, 들킬까봐 겁난다며?”
화장이 무슨 변장술이냐?!
나는 누나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고 누나에게 잡히지 않게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숨어버렸다.
…
평소와 같이 저녁시간 즈음, 잠이 들어 우진의 집으로 날아왔을 때,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 평소와는 달리 아무런 소음도 들을 수 없는 적막감에 이상함을 느꼈다.
“『언니이-!』…라고 불러줄 소미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잠에서 깨어나 인형 집에서 나온 뒤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방학동안 와글와글했던 이곳이,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조용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차라리 날 주머니에 넣고 데려가지 왜 놓고 간 거야-라고 화를 내 보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면 입학식 날, 내 ‘피규어몸’을 데리고 온 우진의 모습이 생각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본래 몸’에 있었으니까, 새 고등학교를 구경시켜주고 싶었을 우진에게는 굉장한 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뭐, 오늘 이 일로 셈셈이가 된 것 치지 뭐.
“‘소미 병원 데려다 주고 올 게 혼자서 집 잘 지켜’…라, 결국 나 혼자 집에 있는 거네.”
분명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았을 아직 물기를 머금은 초코푸딩이, 책상위에서 작은 접시에 놓여 있었다. 물론 내 하체만한 이 푸딩을 내가 다 먹는다는 것은 무리지만―.
평소에 소미와 함께 먹던 푸딩이건만,
평소와는 달리 입맛이 없는 나는 가만히 푸딩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건드리자, 티이잉- 하고 흔들린다.
“쓸쓸한 거야?”
나도 모르게 거울 대신 빛을 반사하며 일렁이는 푸딩을 향해 질문하며 웃고 있었다.
TV도 건드려보고, RC카도 건드려보고, 최근에 우진이 깎은 일반조각상이나, 나를 꼭 닮은 피규어라든가 인형들을 건드려보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재미없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뒹굴 거리던 중, 나는 시계를 쳐다보고는 이내 몇 번이고 다시 시계를 쳐다본다.
평소에는 해보지도 않았던 집안을 마구 뛰어다니기라든지, 바닥을 굴러다닌다든지, 인형 옷들을 모아놓고 하나하나 입어본다든지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무언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 가슴속의 한쪽이 뻥 뚤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녀왔어, 어? 푸딩 안 먹은 거야?』
“너무 많아, 이 바보야.”
잠들어있는 소미를 안고 들어오는 우진에게,
나는 괜한 심통을 부리며 그의 발을 걷어찼다.
…
“지영아, 화장한번 배워보지 않을래?”
“…됐거든요?”
어쩐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게 만드는 화장품들을 들고 방실방실 웃으며 문 앞에 서있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활짝 웃는 얼굴로 문을 닫아ㅈ…려고 했지만, 어쩐지 완강하게 문고리를 잡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지영아, 언니가 말로 할 때 배우지 않으련?”
“물감은 그림판에, 화장은 자기얼굴에.”
안 돼! 절대 사양이다!! 들어오지 마! 이 마귀할멈!!
자기얼굴이라는 훌륭한 캔버스가 있는데 굳이 남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건 실례라고!
낑낑거리며 문을 닫으려고 했건만, 어떻게 된 것인지 오히려 화장품을 들고 있는 누나가 밀고 들어온다.
“아니, 헤헤, 그러니까, 화. 장. 하. 는. 법을 가르쳐준다니까?”
“싫어. 언니(누나)는 단지 내 얼굴에 분칠을 해보고 싶을 뿐이잖아.”
“얘가 눈치는 한번 빨라가지고”
방실방실 웃으며 내 손목을 붙잡고 침대로 밀어붙이는 누나.
“이, 이익-!! 이년아 저리가! 켁! 켁!!”
“우후후, 어디까지 반항하나 볼까?”
꾸욱 하고 체중을 실어서 찍어 누르는 누나.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장사였던 거냐?! 나 죽어!! 나 죽는다고!!
동네사람들!! 나 좀 살려주소!! 나 누나한테 깔려서 죽는다고!!
“사, 살려줘!! 무거워!! 숨 못 쉬― 히이, 히이-!!”
“얌전히 따라 올 꺼야 말 꺼야.”
“히, 히에-! 가, 갈께!! 이익! 놔, 놔줘-!!”
누나의 찍어 누르는 힘과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신하기 직전에 결국 저항이고 뭐고 다 포기한 심정으로 자포자기해서 항복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따라와, 내 방에서 도구를 전부 써야 예쁘게 화장하지.”
“멋대로 오해해서 자기 화장품 쓴다고 변태취급 할 때는 언제고…”
“그때는 그때고, 왜, 또 힘겨루기 한번 해볼까?”
가, 갈께요 깔께요!! 그러니까 좀 잡아당기지 맛-!!
강제로 누나의 방으로 질질 끌려가 머리를 정리하고 뒤로 넘겨 고정시킨다.
내 두 뺨을 잡고 부드럽게 문지르며 피부를 만져보던 누나는, 이내 화장 솜을 들고 스킨을 발라준다.
“으, 기분 이상해.”
“? 어떻게 이상한데 ?”
“기분 좋다면 좋다고 해야 할까, 싫다면 싫다고 해야 할까―아리송한 느낌이야.”
마사지를 받을 때의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누나는 스킨을 바른 뒤에 즉시 로션을 꺼내 이마와 양 쪽 눈 밑, 그리고 코 주위와 아래턱에 찍듯 발라서 얼굴 전체에 문지르듯 발라주며 말했다.
“익숙해져야 해. 여자의 무기니까.”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이거 기분 좋다.”
“쿡쿡, 그럼 잘 됐네. 좋아해서 나쁠 거 하나 없으니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화장이건만, 묘한 느낌과 함께 즐기는 기분이 되었다.
누나의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거울에 비치는 나는 이 감각을 즐기듯, 웃고 있었다.
“그냥 앞으로도 누나가 계속 발라주면 안될까. 귀찮아-.”
“그건 안 되지요 동생님. 자꾸 까불면 이상하게 가르쳐 줄 꺼다.”
별로 이상하게 배우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난 단지 누군가 내 얼굴을 만져준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을 뿐이라고.
아, 그리고 누나가 ‘그리고 언니라니까’라고 중얼거린 거 같기도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심심할 때 가끔 해줘.”
“풉, 싫다고 문 잠그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럴까?”
어느새 파운데이션까지 발라주던 누나는, 이내 컨실러를 꺼내들다가 도로 집어넣고는 말했다.
“넌 뭐, 엄마 닮아서 피부가 워낙 좋으니까 컨실러는 필요 없겠지?”
“나야 뭐, 과정 중 하나라도 줄어들면 좋지.”
내가 직접 말해놓고도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는 분간이 가지 않지만.
결국 누나는 스틱파운데이션까지 꺼내며 얼굴형태 보정이란 것을 열심히 해주더니, 쉐도우와 파우더 작업까지 끝마친 뒤에는 쓸데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말해준다.
“여기까지 왔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왜 화장을 해야 하는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거울을 가리키는 누나.
거울에는 상당히 달라 보이는 외형의 내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직 디테일한 화장은 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라고 말하는 누나의 말에 “여기서 더 달라질 수 있단 말이야?”라고 경악하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1회용 성형수술이라는 수준이다.
화장품이란 일시적으로 상대를 교란시키는 대단한 무기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
“지영아, 너 우진이 좋아해?”
- 흠짓?!
점심시간, 결국 남자가 아닌 여자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들어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게 된 것도 불만인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어께가 들썩일 정도로 놀라서 질문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 수미야? 바, 방금 뭐, 뭐라고 해, 해, 했니?”
“갑자기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딸꾹!!
아, 안 돼, 이러면 애들이 오해한다.
진정하자, 이런 반응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킨ㄷ….
“흐응~ 정곡을 찔렀나 보네.”
화장과 영양실조와 헤어스타일의 삼위일체 덕분인지 이쪽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유진이가 넘겨짚자, 다른 아이들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을 한다.
“자, 잠깐.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헤에~ 지영이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운데~?”
“아, 아니야!”
“그치만 지영이 너, 늘 우진이만 보고 있잖아, 수업시간에나 쉬는 시간에나 하다못해 조금 전까지도….”
“그런 적 없어!!”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말을 만들어내는 거야?! 조금 전에는 우진이 갑자기 이자식이 벌떡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버리니까 궁금해서 쳐다본 거뿐이라고!!
“분명 착각이겠지! 내가 왜 쟤를 좋아해야 하는 건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잖아. 너 엄청 부정적이다?”
“에, 그러고 보니까 지영이, 우진이랑 같은 학교에서 왔나?”
떠들썩한 그룹 속에서 홀로 조용하던 다혜가 ‘같은 학교 나온 친구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하며 유진이를 쳐다보자, 유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한다.
“아닐 걸, 나 우진이랑 같은 학교 나왔는데 졸업 앨범에 지영이는 없었어.”
‘보통 같은 학교 친구면 졸업앨범에 나올거 아냐?’라며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추궁하는 연유진. 어째서 나한테 증거를 요구하는 거야?!
“짝사랑이구나.”
“아, 아니 진짜 아니라니깐?!”
전력으로 부정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바보 멍텅구리 정우진을 짝사랑하는 소녀 A로 낙인찍혀버린 것이다.
“아냐아---아!!”
전력으로 여성그룹을 이탈해 도주한다. 피난처는? 여자 화장실.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거기 처박혀서 나오지 않을 테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아무도 없는 복도를 전력 질주하는 나.
아, 하는 순간 현기증과 함께 한순간 다리가 꼬여서 그대로 바닥을 향해 돌진한다.
“아우우아우아!$*(@@^(#(!!”
비명을 지르며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에 키스를 하기 직전,
순식간에 비틀거리는 내 상체를 잡아주는 구원의 손길.
아슬아슬하게 첫 키스를 대리석과 하는 것을 모면하며 일어서려는 순간,
이상하게 익숙하고, 또 느끼하다고 생각되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괜찮니?”
“아, 고마워. 난 괜찮……………아악!!”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토할 것 같이 느끼한 표정을 한 철호의 복부에 화려한 니킥을 먹여줬다.
# by | 2009/07/03 23:29 | [소설]Tia☆P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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